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문제를 비롯한 외교 현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외교’가 출범 석달 만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에 빠졌다. 미국에서는 대중국 포위망에 동참하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공세를 강화하면서 상대국 외교 원칙에 훈계하는 듯한 ‘5대 요구’까지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호언장담한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선 일본 쪽이 호응하지 않고 있고, 북한의 위협은 거세지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재건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협력 증진’을 외교 기조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에 매몰되고 중국 눈치를 보면서 한-미 동맹을 훼손했다며,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식이었다. 미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듯 접근했지만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본과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은 윤석열 정부에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듯한 자세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계획’ 대북정책을 무시한 채 ‘핵 선제 사용’을 위협한 데 이어, 북한 코로나마저 “남조선 탓”이라며 강력한 보복 대응을 11일 언급했다.
당장 가장 큰 암초는 중국이다. 총리가 “중국 경제가 꼬라박는 수준”이라고 발언할 정도로 가볍게 접근했지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한국을 향해 “독립자주 노선을 견지하라”는 등 ‘5가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요구하며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일변도 외교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압박을 분명히 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넣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무례한 태도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 뒤 중국은 사드 3불에 기존 배치된 사드의 운용을 제한한다는 새로운 요구까지 더한 ‘3불1한’도 들고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사드가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가 이달 말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렬해지는 위태로운 시기의 외교를 ‘전 정부 지우기’ 정도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위기를 가속화할 뿐이다. 진영을 넘어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하고 초당적인 여론의 힘을 모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신중한 실현 방안과 위기 대비책을 마련하는 외교 컨트롤타워가 지금 작동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