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윤석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9일 출근길에 “과거 전례에 비추어 이십몇년을 수감 생활 하게 하는 건 안 맞지 않느냐”며 불쑥 사면 얘기를 꺼냈다. 불과 하루 전 “지금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선을 긋던 신중한 모습과 달라진 것인데, 사실상 사면 예고로 읽힌다. 매우 유감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사면 때도 논란이 됐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가 다시 수면에 떠오른 배경엔 윤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옛 ‘엠비(MB) 사람들’이 있다. 특히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민 통합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위신을 좀 세우는 차원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정면으로 들고나왔다. 안양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 전 대통령이 최근 건강상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하자, 내친김에 8·15 광복절 특사까지 밀고 가자는 논의가 여권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팔순을 넘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여부는 검찰이 관련 법 규정에 따라 엄격하고 공정하게 심사해 가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면은 전혀 차원이 다른 별개 문제다. 이 전 대통령이 징역 1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된 주요 범죄에는 대통령 재직 당시 삼성에 자신의 변호사 비용을 대납시킨 뇌물 수수가 포함돼 있다. 다스가 자기 재산이라는 사실도 끝내 숨기며 국민을 속였다. 이처럼 대통령직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악용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51.7%의 응답자가 사면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한국사회여론연구소 5월2일 발표)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통합’ 운운하는 것은 되레 국민 눈높이를 얕잡아 보는 허황된 주장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이 전 대통령이) 댁에 돌아가실 때가 됐다”며 사면에 적극적인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집권 초기에 추진해 국민 의견도 여쭤보고, 미진하면 국민 설득도 하겠다”는 말도 했는데, 지금의 행보가 그 일환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사면권 남용 시도라 할 것이다. 자신이 일관되게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단지 전직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죗값을 치르지 않고 너무 일찍 사면의 특혜를 누리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