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26일 나왔다. 사진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광고. 연합뉴스
지난 26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관련 판결은 ‘임금삭감용’으로 이 제도를 악용한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판결을 두고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거나 고용이 줄 거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는데, 과장된 얘기다. 이번 판결의 취지를 부정하고 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법원 1부는 정부 부처 산하 연구기관에서 일하며 55살 때부터 깎인 임금을 받고 61살에 퇴직한 ㄱ씨가 기관을 상대로 ‘깎은 임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1억37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 기관은 2009년 61살 정년은 그대로 두고, 55살부터 직급과 역량등급을 낮추는 임금피크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했다. 그러나 정년연장이나 업무 감축은 전혀 없었다. 이처럼 일방적으로 노동자 임금만 삭감한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소송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던 가운데 대법원은 이번에 처음으로 임금피크제 위법 요건을 분명히 했다. 연령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려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감액의 적정성, 임금 감소 보완 조처의 적정성, 감액 재원의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 달성 여부 등 4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듯 그것이 세부 판단 기준은 아니다.
임금피크제는 정부가 2015년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내는 등 먼저 공공기관에서 도입 드라이브를 걸었다. 법정 정년이 60살 이상으로 늘어나며 민간에도 확산됐다.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의 52%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우 이번 판결이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년 보장에 임금만 깎고 신규채용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는 논란이 클 것이다. 판결에 대한 해석을 두고 혼선이 일고 갈등이 커질 것인 만큼,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정부가 노정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임금피크제는 호봉제 아래서 임금 수준이 높아진 고령 노동자에 대한 해고 압력을 줄이고, 임금 감축 재원으로 신규채용을 늘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노사 간 협상력의 차이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사례가 많았다. 임금피크제와 고용효과의 상관성을 분석해보면 도입 연도에 일부 고용이 증가할 뿐 지속적인 고용 증가 효과는 없었다는 연구들도 있다. 노동자 일방에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향후 추가 정년연장 논의가 노사정 신뢰 속에 진척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