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개정안 입법을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린 27일,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이 윤석열 당선자 취임 뒤 6·1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실성도 없거니와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장제원 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국회에서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검수완박법을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키려 한다”며 “이런 다수의 횡포에 대해 당연히 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과 야합한다면 국민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날 본회의가 소집되자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에 나섰지만 법안 통과를 막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투표안이 여론전을 노린 ‘맞불카드’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박병석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의총 추인까지 거쳐 국민께 공개적으로 드린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원칙이 무너지면 의회민주주의와 협치는 설 자리가 없다”고 했듯, 국민의힘은 이미 명분을 잃었다. 선거범죄 수사권 한시 존치 등을 넣은 조정안마저 거부하며 전체 판을 스스로 깼다. 정상적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국회의 시간’에 당선자 쪽에서 ‘횡포’ ‘야합’ 등 거친 말을 쓰고 나선 것은 대의민주주의에도 어긋날뿐더러 현직 대통령의 공포권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은 정치적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축소해석돼야 한다”며 “만일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권을 남용하여 위헌인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것도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고 못박은 바 있다. 선관위는 이날 <연합뉴스>에 재외국민 참여를 제한한 현행법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상태라 “현행 규정으로는 국민투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장 실장이 ‘6·1 지방선거’를 국민투표 시기로 거론한 것을 두고 이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사실이라면 선을 넘은 정략적 행동이다. 다만 개정안의 일부 내용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국회가 충실한 후속 논의를 통해 이를 풀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