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가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담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간담회를 하면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말이 좋아서 ‘요구’이지, 사실상 사퇴를 압박한 것이다. 독립 수사기관인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인수위 사무실에서 공수처와 간담회를 한 뒤 연 브리핑에서 “김 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공수처에) 말했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김 처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 공정성은 공수처의 생명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훼손되거나 의심되면 공수처의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답변한 것을 거론하며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임기가 정해진 수사기관의 수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행위야말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허무는 일임을 정말 모르고 한 말인지 한심할 따름이다. 이 의원은 “공수처의 국민적 신뢰는 거의 바닥이다. 저희가 국민 의사를 전달한 것이지, 거취를 압박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무책임한 말장난이다.
물론 공수처가 그동안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여러 차례 수사력 부족을 드러냈고, 통신자료 조회 논란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것과 공수처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더욱이 공수처는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업무보고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돼 있을 정도로 독립성을 중시하는 기관이다. 인수위가 다른 정부 기관과 달리 ‘업무보고’가 아닌 ‘간담회’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인수위의 공수처장 사퇴 압박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윤 당선자 쪽의 ‘월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한명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5일 “김오수 검찰총장은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며 김 총장의 사퇴를 압박해 물의를 빚었다. 이런 행태가 반복된다면 윤 당선자가 정말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공수처의 경우, 윤 당선자가 ‘고발 사주’ 의혹 등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자중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