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인수위원장(왼쪽 둘째)이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여성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여성단체 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과 여성단체 대표들이 30일 여성가족부의 ‘앞날’을 두고 간담회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이 폐지 방침을 워낙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터라 입장 차가 좁혀지기는 쉽지 않았을 거로 보인다. 그러나 안 위원장은 윤 당선자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한 당사자로서 다음 정부의 조직이 퇴행이 아닌 미래지향적으로 구성되는 데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날 여성단체들의 입장을 경청했다면 이 사안에 대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윤 당선자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20대 남성이라는 특정 집단의 표심을 결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느닷없이 등장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하고 성별 갈등으로 증폭시켰다. 그 결과 윤 당선자와 국민의힘은 대선 막판 거센 역풍을 맞았다. 정책적인 타당성과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한 검토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공약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윤 당선자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과 “여가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 말고는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도 내세우지 못한 채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려는 인수위가 딱해 보일 지경이다.
인수위 안에는 여성정책 경력을 갖춘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고, 여가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한명도 없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으니 배제한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단편적이고 기이한 아이디어만 나오는 건 필연적이다. 여가부 업무를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으로 쪼개 이관하고, 성평등 업무는 위원회를 만들어 맡기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한다. 굳이 컨트롤타워를 없애 일을 복잡하게 하고 자칫 옥상옥이 될 수 있는 위원회 체계로 가겠다니 어처구니없다. ‘미래가족부’를 신설해 변화된 가족 형태와 인구 문제 등에 대처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여성 정책을 가족과 출생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안 위원장은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여러 우려점들에 대해 말씀을 들었고, 그걸 반영해서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서는 사회복지문화분과와 기획조정분과가 함께 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2시간 넘게 여성계의 우려와 고언을 들어놓고 인수위 내부 절차만 설명한 셈이다. 공동정부의 한 축이 돼야 할 그가 당선자의 면을 세우는 역할에만 그친다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