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운데)와 경제 단체장들과의 첫 회동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리고 있다. 가운데 윤 당선자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손경식 경총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장제원 비서실장, 김은혜 대변인,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경제단체장들의 21일 만남은 앞으로 윤 당선자의 ‘친기업’ 행보를 예고한 자리였다. 윤 당선자는 ‘기업에 방해되는 제도를 제거하겠다’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했고, 경제단체장들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개정 등 민원을 쏟아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번 모임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사실상 전격 ‘복권’된 데 이어 윤 당선자와 경제단체장들의 대화 내용까지 보면,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친기업’ 일변도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 당선자는 경제6단체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해 요소가 어떤 것인지 많이들 느끼고 아실 테니 앞으로도 조언해달라”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또 “(재계가) 저와 언제든 직접 통화할 수 있게 하겠다”며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개통했던 대통령과 기업인 간 직통전화를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연상시킨다.
경제단체장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규제의 합리적인 개선을 건의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중대재해법을 완화해달라고 했다. 허 회장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며 “안전이 중요하지만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법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에서 산업재해가 가장 심각함에도 처벌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못 미치는 상황을 알고나 이런 주장을 하는지 개탄스럽다. 경제단체들은 주 52시간제 유연화, 최저임금제 개선, 상속세·법인세 완화 등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윤 당선자가 대선 기간 중 이미 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친기업 행보를 보인다고 해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공약에서 또한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공정 기반 조성”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규제 완화와 함께 “공정 경쟁 확립”을 주요 수단으로 삼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해선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하지만, 동시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그리고 반시장적 행태를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공정 경쟁 확립이라는 공약이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편, 민주노총도 이날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 당선자에게 대화의 자리를 제안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 당선자가 민주노총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잘 알고 있지만,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에 귀를 여는 것이 ‘국민 통합’의 출발”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걱정이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윤 당선자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주 120시간 노동’ 발언 등 왜곡된 노동관을 자주 드러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윤 당선자가 당선 일성으로 강조했던 ‘국민 통합’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