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 이전 부지를 외교부가 입주해 있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별관과 용산 국방부 청사 두 군데로 압축했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별관(왼쪽), 국방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8일 인수위원회 첫 전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새 정부 국정 과제를 수립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민생에 한 치의 빈틈이 없어야 하고, 국정 과제의 모든 기준은 국익과 국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올바른 방향이다. 다만 이 주문은 지금 윤 당선자가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청와대 이전’에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오미크론 대확산과 세계 경제 환경의 악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도 등 위기의 3각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지휘부인 대통령 집무실을 제대로 된 계획과 면밀한 준비 없이 덜컥 옮기겠다는 것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새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이 이날 “봄꽃이 지기 전에는 국민 여러분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 “윤 당선자는 청와대는 안 들어갈 거다”라며 취임 전 이전 강행을 시사한 것은 우려스럽다. 이날 오후 인수위 기획조정·외교안보 분과 위원들은 청와대 이전 대상지로 지목된 용산 국방부 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 대한 현장 점검을 벌였다. 당선자 대변인의 발언이 인수위의 점검마저 요식 행위로 여기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앞서 윤 당선자는 대선 기간 중인 지난 1월27일 ‘광화문 집무실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하면서 “경호 문제나 외빈 접견 문제는 저희가 충분히 검토했다. 당장 인수위 때 준비해서 임기 첫날부터 광화문 집무실에 가서 근무가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당선 뒤 드러난 실상은 딴판이다. 충분히 검토했다던 경호와 시민 불편 등을 이유로 정부서울청사 본관 이전안을 며칠 만에 백지화했다. 그래놓고는 아무런 사전 검토나 예고도 없었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방안을 지난 주말께 별안간 들고 나왔다. 일부에선 경호처장 내정자가 국방부 출입기자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어이없는 일이다.
청와대 졸속 이전이 야기할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먼저 용산 이전은 국방부와 합참 등의 연쇄 이전을 초래해 정권 이양기 안보 공백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설치된 국정 전반에 대한 지휘 통제 시스템이 사장되는 것은 물론, 국방부·합참 벙커의 군사 지휘 시스템도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이전 비용도 문제다. 윤 당선자 쪽은 이전 비용을 용산 500억원, 광화문 1000억원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용산의 경우 국방부·합참과 경내 군사시설 등의 이전 비용과 청와대 경비부대의 이전 설치 비용 등을 합하면 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그렇다고 군사시설을 남기거나 일부만 옮기면, 삼엄한 경비와 보안 때문에 국민들의 접근은 청와대 못지않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윤 당선자 쪽은 용산시민공원이 조성되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지만, 용산공원은 빨라야 2027년에 완공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집무실을 이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서울청사 별관도 본관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경호상의 취약점과 협소한 장소, 시민 불편 등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이런 현실적 문제점과 별개로, 취임 이전까지 무조건 ‘청와대 이전’을 완료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태도는 왜 그가 이토록 이 문제를 집착하듯 밀어붙이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마저 17일 “누가 봐도 용산으로 간다는 것은 풍수지리설(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을 윤 당선자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물론 윤 당선자 쪽에선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과 의지만 있다면 취임 이후에도 일정 기간 충분한 준비를 거쳐 실행 가능한 일이다. 또 청와대에 머무는 기간에도 ‘국민과의 소통’ 약속을 실천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청와대 봄꽃 구경도 좋겠지만, 국민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건 안보 공백과 실생활의 불편이 없는 든든한 국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