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가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불과 24만표 차이였다. 패배를 인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라고 위안 삼을 수도 있다. ‘국민은 왜 우리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냐’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선거는 결과로 말해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 위로가 절실한 건 이재명 후보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아니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1600만명의 유권자들이다. 그들은 온갖 풍문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에게 표를 줬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증명한 2017년 그 뜨거웠던 촛불의 열망이 이렇듯 허망하게 사그라들어선 안 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절박함이 참패의 문턱까지 갔던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를 득표율 격차 1%포인트 미만의 초박빙 구도로 견인한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촛불’이 만들어준 정권을 불과 5년 만에 내줬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스스로 만들어낸 성과물이 아니었다. 불의와 불평등, 불공정에 분노해 촛불을 든 시민들이 ‘5년 시한부’로 위임해준 권력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 권력을 자신들이 ‘적폐’라 낙인찍었던 세력, 적폐청산의 적임자로 낙점해 칼자루를 쥐여준 전직 검찰총장에게 넘겨버렸다. 턱없는 자만과 근거 없는 자기 확신 때문이었다.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성폭력과 2차 가해, 국민을 양분시킨 ‘조국 사태’, 집 있는 사람이나 집 없는 사람 모두 힘들게 만들어버린 부동산 정책 실패의 근원에 자리잡은 것도 집권세력의 오만과 확증편향이었다. 그것을 상징하는 언어가 ‘내로남불’이다.
지금 민주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초박빙 패배’에 안도하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주문 삼아 현실에 안주하려는 유혹이다.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47%가 넘는 득표율, 1600만명이 넘는 지지,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래 가장 근소한 24만표의 격차”를 강조한 송영길 대표의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발언이 불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대표로서 당원과 지지자들을 위로하려는 ‘정무적’ 발언이라 믿고 싶지만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절반의 국민’에게 무거운 빚을 졌다. 채무 상환의 방법은 하나다. 수권을 준비하는 유능한 야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선거 기간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개혁 공약부터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 그 첫걸음은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이다. 민주당에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는 투표일 직전 국민의힘과 합당에 합의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공약이기도 하다.
‘586 운동권 정당’의 이미지도 탈피해야 한다.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하려는 유혹을 떨치고 당 전체가 낮은 자세로 ‘다른 절반’의 국민 목소리에도 귀를 열어야 한다. 민주화운동으로 쌓은 도덕적 권위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실력과 성과로 평가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가진 것을 버려야 민주당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