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7시께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리 일대 야산 정상에서 길이 약 1km의 거센 불길이 일며 산등성이를 태우고 있다. 울진/연합뉴스
지난 4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등 동해안 일대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6일까지 사흘째 이어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많은 주민들이 무서운 기세로 덮쳐온 화마에 집과 농경지 등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다. 비통함과 절망감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산불이 걷잡을 없이 번져가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국민들도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굴렀을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6일 오후 6시까지 1만5420㏊의 산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축구장 면적의 2만배가 넘는 것으로, 서울 면적의 4분의 1가량이 피해를 본 것이다. 산불 관련 통계가 있는 1986 년 이후 피해 면적 기준으로 두번째다 . 역대 가장 피해가 컸던 산불은 2000 년 삼척 등 5 개 지역에 걸쳐 발생한 산불로 피해 면적이 2만3794㏊로 집계됐다. 이번 동해안 산불을 울진~삼척 산불과 강원 강릉~동해 산불로 나누면 모두 6개의 산불이 진행 중이며, 이들 지역 외에 강원 영월, 부산 금정, 경기 안산, 대구 달성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소방청과 산림청은 화재위험경보 가운데 가장 높은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산불의 기세가 워낙 강해 아직까지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때 산불이 울진 원전과 삼척 LNG 생산시설 부근까지 번졌으나 소방청의 공세적 진화 작업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생각만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는데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산불의 완전 진화와 함께 피해 지원·복구에도 총력을 다해야 한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4635가구 7330명이 대피 중이라고 한다. 이재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불길을 피해 몸만 빠져나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할 것이다. 이재민의 대부분이 고령층이어서 걱정이 더욱 크다.
정부는 이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산불 피해가 가장 큰 울진과 삼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복구비의 일부를 국비로 지원하고 피해 주민에게 생활안정지원금과 함께 공공요금 감면 등 간접 지원이 이뤄진다. 정부는 강릉과 동해 등은 산불 진화 뒤 피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울진군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를 찾아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셨으니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며 위로하고 “정부는 신속하게 복구가 이뤄져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민들은 “혼자 사는데 집도 다 타고 산도 다 타고 대책이 없다” “엉겁결에 나오느라 돈도 모두 두고 나왔다”며 문 대통령에게 피해를 호소했다. 정부는 이재민들의 주거 대책과 재산 피해 보상은 물론 정신적 충격 등 건강에도 문제가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기업들도 산불 피해로 고통을 겪는 주민들을 위해 성금을 내고 있는데 온 국민이 동참했으면 한다.
이번 동해안 산불이 이처럼 빠르고 거세게 동시다발적으로 번진 것은 2주 넘게 건조경보가 이어질 정도로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데다 초속 20m가 넘는 강풍까지 분 게 직접적 원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올해 2월 전국 강수량은 13.3㎜로 평년의 14% 수준이라고 한다. 또 옥계에선 60대 남성이 방화를 한 게 산불의 발단이 됐고 울진은 담뱃불 실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몇년 새 미국 서부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가뭄이 재앙적인 산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이날 “겨울과 봄철 건조함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형 산불의 위협이 계속될 것”이라며 “국가적 재난인 산불 대응을 이제 기후위기 적응 차원의 대책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본격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모두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