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반군이 장악한 코르리브카 도네츠크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순찰하고 있다. 도네츠크/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친러시아 반군 장악 지역을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병력 투입을 결정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침공의 시작”이라고 규정하고 러시아에 대한 본격적인 제제에 착수했다. 유럽연합(EU)·영국·일본·호주·캐나다 등도 곧바로 미국의 움직임에 동참했다. 특히 독일은 러시아로 이어지는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2’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24일로 예정됐던 러시아와의 외교 장관 회담도 취소시켰다.
러시아도 정면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의 평화 정착을 위한 ‘민스크 협정’ 파기를 공식 선언하고, 의회로부터 돈바스 파병을 공식 승인받았다. 러시아가 어디까지 확전을 계산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본격화되면 국제결제망 배제와 반도체 수출 금지 등 ‘초강력 제재 패키지’로 맞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강대국들이 진영을 규합해 대결하는 ‘신냉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은 냉전 이후 미국 주도로 짜여졌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에 나서면서 혼란스러운 ‘G 제로’의 시대다. 강대국들은 대결과 긴장 고조, 아니면 타협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강대국들 사이에 낀 나라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워 구소련의 영향력 복원을 시도하고 있고, 미국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을 비롯한 동맹을 더욱 강력하게 규합해가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파장은 우리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신냉전 속에서 북·중·러 공조가 긴밀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군사력 강화와 강경 노선으로 나아갈 위험이 커졌다. 한반도 정세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미국·러시아 등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기로 하고 핵무기를 모두 포기했던 우크라이나의 지금 처지는 북핵 문제 해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제유가·환율·무역수지 등 경제 충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런 국제질서 변화의 본질적 의미를 정확히 읽어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 또한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이는 현 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부에도 요구되는 막중한 과제라는 점을 대선 후보들이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