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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혐오 조장에 망자 조롱, 이준석 정치의 끝은 어디인가

등록 2022-02-21 20:09수정 2022-02-21 20:15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9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테크로폴리스 엠스퀘어 광장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9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 테크로폴리스 엠스퀘어 광장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0일 ‘대선 완주’를 선언하면서 그의 선제적 제안이 물꼬를 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는 서로를 향한 불신과 감정적 골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는 사실만 확인시킨 채 막을 내렸다. 단일화 무산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두 당의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단일화 논의 국면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보인 태도다.

이 대표는 안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제안한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을 형상화한 조각물 사진과 함께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글을 올렸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진즉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유세 차량 사고로 국민의당 관계자가 숨지자 페이스북에 “당(국민의힘)을 대표해 돌아가신 분을 애도한다”고 썼던 그는 닷새 만에 고인을 조롱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장례를 마친 안 후보가 고인의 유지를 들어 대선 완주 의지를 보이자 방송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된다. 국민의당 유세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들어가기 전에 유서를 쓰고 가시나”라고 비꼰 것이다.

이 대표의 말은 두 가지 점에서 의도가 고약하다. 그는 안 후보의 당선을 위해 일해온 선거 운동원을 ‘유세차 운전자’로 깎아내렸고, ‘죽은 이의 생각’을 뜻하는 추상어 ‘유지’를 ‘유서’라는 사물어로 바꿔치기했다. 안 후보 발언의 의미를 폄훼하고 바짝 약을 올리려는 속내가 노골적이다. 단일화 결렬의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안 후보에 대한 동정론을 차단하려는 이 대표의 의도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사실은 정치적 발언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물어야 한다. 이준석 대표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상대 주장의 부당함과 우리의 정당성을 드러내 관망하는 대중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는 일과, 상대방의 상처를 들춰내고 조롱해 관객의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에 속한다. 전자가 정치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온라인상에서 횡행하는 ‘패드립’(패륜적 말싸움)에 가깝다. 이 대표는 지금 공동의 삶을 주조하는 정치를 온라인 게임의 ‘입 배틀’로 추락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0선의 30대 정치인’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됐을 때, 그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는 진영을 달리하는 쪽에도 적지 않았다. 젊음과 열린 사고를 가진 그가 ‘낡고 고루한 보수’를 혁신해 한국 정치에 긍정적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대표 이준석의 이후 언행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반페미’ ‘반중’의 날 선 정서로 표출되는 청년층의 낙담과 분노에 대해 그 근원을 파헤쳐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현상을 추수하고 그들의 좌절감을 같은 처지의 ‘을’들을 향한 적대와 혐오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정치적 사익을 취하는 데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의 불온한 욕망과 처신 탓에 어렵게 틔운 청년 정치의 싹과 세대교체의 오랜 열망이 좌절되어선 안 된다. 이준석 대표는 위험한 폭주를 이쯤에서 멈추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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