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씨제이대한통운 본사를 12일째 점거하고 있는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씨제이대한통운본부가 21일 오전 집회에서 회사에 대화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씨제이(CJ)대한통운본부의 파업이 21일로 56일을 넘겼다. 본사 점거농성은 11일째였다. 택배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2000여명이 모여 ‘택배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진경호 위원장은 물과 소금마저 끊는 단식에 들어갔다. 노조는 회사 쪽에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한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응하지 않고 있다. 상대가 곡기까지 끊는데 대화를 거부하는 태도는 어떤 이유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지난해 6월 타결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해석을 두고 확연한 인식 차가 드러난다.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택배기사들의 주당 노동시간을 60시간 이내로 줄이고, 지역 터미널의 분류작업을 택배기사 업무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노조는 분류작업에 인력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아 택배기사들이 떠맡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는 ‘불가피한 경우 택배기사를 분류작업에 투입하되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점을 들어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는 씨제이대한통운의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에 ‘주6일 근무’와 ‘당일 배송 원칙’이 명시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요 택배사 가운데 ‘주6일 근무’를 명시한 곳은 씨제이대한통운 말고 없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회사는 “표준계약서에 주 60시간 안에 업무를 수행하도록 명문화했기에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의 취지가 한해 두자릿수에 이르던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방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장시간 노동을 경제적 보상과 맞바꾸는 방식은 취지에 분명히 어긋난다.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더구나 노조의 대화 요구를 거부하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회사 쪽의 태도는 무책임하다.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
노조도 투쟁 방식이 대화 요구에 최적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택배 대리점주의 극단적 선택 뒤에 일부 노조원들이 보인 태도로 여론이 악화된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사 모두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당시의 유연한 자세로 돌아가기 바란다. 그때만큼 정부가 해야 할 역할도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