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 뒤 첫 주말인 16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QR코드 체크인을 위해 대기한 모습(왼쪽 사진)과 경기도 한 대형마트에 방역패스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법원은 지난 14일 상점·마트·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서울시에 한정해 정지했다.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지난 14일 3000㎡ 이상 대규모 상점·마트·백화점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법원의 행정13부는 대규모 점포 방역패스 적용을 정지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별로 이렇게 상반된 판단을 내리니 법원 결정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방역 정책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행정4부는 “상점·마트·백화점은 이용 행태에 비춰볼 때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며 “백신 미접종자들이 기본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시설에 출입하는 것 자체를 통제하는 불이익을 준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라고 밝혔다. 반면 행정13부는 “소형 점포나 전통시장에는 방역패스가 적용되지 않아 생필품 구매가 전면 차단되지 않는다”며 “방역패스 처분 효력을 유지해 공공복리를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같은 사안을 두고 법원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은 유례없는 팬데믹 속에서 개인의 기본권과 공공복리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 가늠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가치관에 따라 방역 정책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 법원은 중앙정부의 방역 조처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린 결론을 내놨다. 행정13부는 소송 대상이 된다고 본 반면, 행정4부는 정부 조처가 지방자치단체의 공고를 통해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지자체를 상대로만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봤다. 결국 행정4부의 방역패스 적용 정지 결정은 서울에서만 유효하게 돼, 나머지 다른 지역들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방역은 전국민의 안전 및 공공복리와 직결되는 고난도의 정책이다. 의학·역학적 전문성을 필요로 하며, 국지적이 아닌 전국적 대응과 적시 집행이 필수적이다.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 방역 정책을 법원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가 지난 4일 학원·독서실 등의 방역패스 적용 중단 결정을 내릴 때도 백신 접종 효과에 대해 비과학적 의견을 제시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법원은 기본권 보호라는 사명에 충실하되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의 과학적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심리해야 할 것이다. 법원의 엇갈린 결정으로 인한 당장의 혼선을 바로잡기 위해선 상급심의 결정이 신속히 나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부도 법원이 제기한 기본권 침해 우려를 검토해 합리적인 부분은 수용하면서 방역패스 체계를 조속히 재정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