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리기로 한 제1516차 수요시위가 이곳을 집회장소로 선점한 자유연대에 밀려 소녀상에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앞에서 열리는 동안, 보수단체 회원이 일장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5일 3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소녀상 앞에서 열리지 못한다. 수요시위를 방해하려는 보수단체들의 이 자리를 가로채려고 집회 신고를 먼저 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들이 꼼수를 부려 결국 수요집회는 길 건너편으로 쫓겨나 30년의 역사를 기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지난 2020년 6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의원(무소속)의 후원금 유용 의혹으로 파문이 커진 상황을 틈타, 자유연대와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이 평화의 소녀상 앞 집회 신고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수요집회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 신고를 받는 종로경찰서 대기장소에서 돌아가며 밤을 새는 탓에 정의연은 매번 집회 장소를 빼앗기고 있다. 이번 30주년 수요집회 신고일이었던 지난 12월5일을 앞두고 정의연은 이틀 전부터 대기장소에서 밤을 샜지만, 이미 보수단체 회원들이 숙식을 해가며 신고 장소에서 버티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지난 2년여 동안 매주 수요일 소녀상 앞에 모여 수요집회를 향해 폭언과 성희롱 발언을 일삼아 왔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인권운동가들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과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며서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서 겪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용기가 진실의 문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전시하 여성 성폭력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인권과 평화 운동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은 특정 단체나 개인이 아닌, 국경을 넘은 수많은 이들의 참여와 연대였다.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의혹의 진실은 재판을 통해 가려져야 하지만, 이를 틈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전시 성폭력의 진실을 부정하고 ‘위안부 운동’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보수단체들의 만행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연을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뺏으려는 꼼수 집회를 방치하고 집회 현장에서 인권 침해를 방치하는 경찰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내기로 했다. 대법원은 2014년 먼저 신고된 집회가 다른 집회 개최를 봉쇄하기 위한 허위 신고일 때는 보장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수요집회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보수단체의 몰상식한 행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 일각의 역사 부정 움직임을 바로잡기 위한 여론의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