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 수사 무마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가 국방부와 군 검찰단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상관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중사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준장)이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17일 공개됐다. 지난 5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지만, 수사 책임자인 전 실장은 되레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가 이날 공개한 녹취록은 지난 6월 중순 공군본부 보통검찰부 소속 군검사들이 나눈 대화다. 한 군검사가 “그러니까 제가 (가해자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범행 부인에 피해자 회유 협박에, 2차 가해에 대체 왜 구속을 안 시킨 거예요. 구속시켰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라고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자, 선임 군검사는 “실장님(전익수 법무실장)이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야 우리도 나중에 나가면 다 그렇게 전관예우로 먹고살아야 되는 거야. 직접 불구속 지휘하는데 뭐 어쩌라고? 피곤하다. 그만 얘기하자. 입단속이나 잘해들”이라고 말했다. 녹취록에는 공군 법무실이 압수수색 정보를 미리 받고 증거인멸을 한 정황 등도 담겨 있다. 군인권센터는 “가해자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에 전 실장과 군법무관 동기이자 대학 선·후배 사이인 예비역 대령이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며 전 실장이 전관예우 때문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달 7일 이 중사 사망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전 실장을 비롯한 수사 관계자들과 지휘라인을 모두 불기소했다. ‘자신은 보고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사건 지휘도 하지 않았다’는 전 실장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전 실장의 수사 무마 정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군검사들의 대화 녹취록이 새로 공개된 만큼 재수사가 불가피해졌다. 녹취록이 공개된 뒤에도 전 실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라서도 재수사는 필요하다. 그리고 재수사는 이 중사 사망 사건 수사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는 군 검찰단에 또 맡겨서는 안 된다. 군으로부터 독립된 외부기관이 수사를 맡는 게 타당하다. 이 중사의 아버지도 이날 “특검을 도입해 부실수사를 한 사람들을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추행 수사를 미루고 가해자를 감싼 군 사법체계의 강고한 카르텔이 이 중사를 죽음으로 몰고간 중요한 원인이다.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이 중사와 유족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주고 우리 사회가 군 성폭력 근절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