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90년 11월, 한 할머니가 충남대에 예금통장과 1만2천평의 땅 문서를 기탁했다. 통장엔 1억원의 현금이 있었고, 부동산은 당시 평가로 50억원에 이르렀다. 39살에 남편과 사별한 뒤, 김밥 행상으로 외아들을 키우며 한 푼 두 푼 모은 전재산이었다. 기부문화란 게 싹조차 나지 않았던 때였으니 언론·정부·학계 등에서 공치사가 쏟아졌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재물은 만인이 공유할 때 빛이 납니다.”
충남대는 할머니의 뜻을 살려 강당과 회의장, 연주홀이 있는 회관을 짓기로 했다. 이름은 할머니의 불교 법명(정심화)을 따서 ‘정심화국제문화회관’으로 했다. 그런데 2000년 7월 우여곡절 끝에 회관이 준공되자 대학 쪽은 명칭에서 ‘정심화’를 뺐다. 총 건립비는 200억원에 이르는데, 할머니의 기탁 재산 가운데 현금화돼 쓰인 것은 8억원뿐이라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할머니의 뜻으로 시작된 회관이었다. 투입된 돈의 액수로 따질 일이 아니었다. 학교 쪽은 손을 들었다. 회관 로비에 “이복순 여사의 숭고한 뜻을 회관 이름에 반영시키기로 …”라는 내용의 동판을 세웠다.
4년 뒤 충남대는 다시 ‘정심화’를 빼고 ‘충남대국제문화회관’으로 개명하겠다고 발표했다. 회관 주변에 국제교류원과 언어교육원 등이 들어서 국제적 교육문화단지로서 통합명칭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집요함이 놀랍다. 둘러대는 변명은 어처구니없다. ‘김밥 할머니’의 헌신을 되살리는 것만큼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건 없다. 김밥의 덕행으로 쌓아올린 문화회관은 그 자체로도 국제적인 자랑거리다.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은 속히 교육자의 양심을 되찾기를 바란다. ‘기부금 브로커’라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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