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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렌즈세상

숨이 빠져나간 들판에 서서/백무산

등록 2006-01-09 22:28

- 이 나라 참된 농사꾼 전용철, 홍덕표님 영전에

이들이 아니었더라도,

갈퀴손에 밭고랑 같은 주름의 흙빛 얼굴이 아니었더라도,

땅에 몸을 낮추어 저리 낮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도,

이력서에 단 세 줄밖에 쓸 것 없던 사람들 아니었더라도,

정말 그런 사람들 아니었어도,


짓밟고 내리 찍고 짓이기고서도

억울한 건 자신들이라고

왜 우리만 책임 지냐고, 물러날 수 없다고

그러고도 분을 못 삭여 그 빛나는 제복과

훈장이 다 젖도록 눈물 펑펑 흘렸을까

저들의 눈에, 힘을 잃은 늙은 소들이 아니었으면,

목숨 값 헐한 개값에 폐기닭이 아니었으면,

저들의 기억에서 저들의 양심에서

저들만의 정의로운 언론에서

저토록 신속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을까

다 파먹고 버린 빈 껍질

이들을 파먹지 않고서 어떻게 그 허기진 고개를 넘어

폐허를 일으켜 불야성을 이루었을까

이제 푸르던 들과 생명의 흙은 물건 값 부동산일 뿐

측량할 수 없는 생명의 물결 숨결에

저울질 할 수 없는 삶과 인생의 시간에

붉은 말뚝 박고 측량을 하고 자질을 하여

삶도 목숨의 단위도 저울에 다는 고깃값이 되어야 하기에

그리하여 그날의 시위대는 마치

무논에 있어야 할 모들이 타는 아스팔트 위를 뒹굴고,

시멘트 거친 바닥을 호박넝쿨이 한사코 기어오르고,

고라니 다람쥐들이 산을 뭉개고 낸 아스팔트 위를

놀란 눈으로 뛰어든 듯하였으나,

그것이야말로, 불온하고,

그것이야말로, 죽은 땅에서는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저리도 짓이기고 내리 찍고 밟아버렸을까

저 낯익은 얼굴들을 보아라

저들의 발아래 피투성이 된 낯익은 얼굴들을 보아라

우리를 낳아 기른 밭고랑 같이 깊고 검은 주름의 얼굴들

그 피투성이 된 흙빛 얼굴들

잊어버리고 등을 돌려버린 그 흙빛 얼굴들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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