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내가 상추와 치커리, 무와 배추를 심어 먹던 마을텃밭이었다. 어느 해부터였나,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운 거리였다. 해질녘, 오이를 따며 듣던 그 소리는 얼마나 뭉클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던가. 그러나 사라졌다. 불타버렸다. 텃밭 언저리 가건물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한 학생이 화마에 스러졌다. 타다 만 악보 위로 눈이 쌓인다. 나는 이렇게나 늦게, 그 친구가 들을 수 없는 소리로, 고마웠노라 인사한다. 노순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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