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현명한 통치자의 영도로 진보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 바라는 바와 달리 역행할 수도 있다. 거꾸로, 그처럼 우매한 왕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하지만 그 불행에 대한 저항이 더 멋진 역사를 이끌어오기도 한다. 우리의 많은 역사가 그 사실을 증거하지 않는가. 내가 역사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가? 그 자기 혐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성과 역사의 진행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굽혀지지 않는다.
김병익ㅣ문학평론가
출판사에서 기증하는 책을 무심코 받아 집에 와서 펼쳐보니 안재원 지음의 <아테네 팬데믹>이었다. 처음 이름을 보는 저자의 약력을 보며 우리나라의 학계도 영어나 일본어로 보던 그리스 고전을 원어로 읽고 연구하는 수준으로 어느 사이 뛰어오른 발전을 반가워하며, 그래서 더 그 책을 읽어보기로 작심하게 한 것은 바로 우리가 처한 ‘팬데믹’ 상황을 25세기 전의 그리스는 어떻게 겪고 이겨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나의 굳은 머리로 우선 다가온 것은 ‘콤플렉스’란 프로이트의 말로 익숙한 외디푸스(책엔 ‘오이디푸스’로 표기되었는데 나는 내게 익숙한 ‘외디푸스’로 쓰겠다) 왕 이야기였다. 관심의 그 챕터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비극을 예상한 내 짐작과는 달리 ‘진정한 통치자’란 의외의 제목을 달고 있었다.
“태어나서는 네 발로, 성장해서는 두 발로, 늙어서는 세 발로 걷는 자가 무엇인가”의 수수께끼를 ‘인간’으로 풀어냄으로써 스핑크스를 자살케 한 외디푸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그 비극의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역병은 사회 질병인 동시에 정치적인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외의 신화 분석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른바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질투하는 ‘복합심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그런 미시적 관점에서 “역병은 욕망과 동행한다. 그 욕망은 때로는 ‘자유’의 이름으로, 때로는 ‘생존’의 울부짖음으로 표출되고 그것을 이른바 ‘경제 코로나’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거시적 관점으로 아주 크게 확대하여 국가적 문제로 제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유행성 발열증상으로 생각된 이 코로나의 전염은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둔 접촉을 요구하며 사회 전반의 방역과 치료를 강제하며 전쟁보다 더 심하고 대공황보다 더 진한 불황을 안겨주었다. 그 인과관계는 여하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존’의 위기감을 실감하게 한 고통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었다.
테베의 환란은 역병의 원인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그 인과를 깨닫게 된다. 역병의 근원에 대한 신탁의 답변은 윤리적인 죄였고 통치자인 외디푸스는 당연히 죄를 추적하여 “진상을 끝까지 파헤쳤고 그 결과 자신이 범인임이 밝혀지자 스스로 추방의 길에 올랐다. 아테네를 오염시킨 범인을 추방하겠다고 스스로 공포한 칙령을 준수한 것이다”. 이 비극의 원인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할 패륜아란 점지를 받고 버림받았고 자기의 그런 태생을 모르고 방황하는 중에 그 비극적인 예언을 실행하고 만 것이다. 그 잘못의 근본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인의 질문은 ‘그는 누구인가’에서 연장된 ‘나는 누구인가’였고 그 질문의 답변을 재촉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였다. 외디푸스는 이 질문의 의미를 어머니이자 아내인 여인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찌르는 것으로 추궁했고 맹인이 되어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의지하여 방황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른다. 이로써 디오니소스 극장이 “전쟁과 역병으로 무너진 아테네를 재건하고 사회를 성숙한 시민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건설되는데 저자는 이 비극의 과정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라고 적는다. “국가의 뿌리는 진실이다. 진정성이야말로 통치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외디푸스는 역병과 전쟁으로 이중의 위기에 처한 아테네 시민들이 희구한 통치자였다. 그는 성실함, 진실함, 책임감을 모두 갖추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사람이었다.”
나는 좀 엉뚱하지만 오늘의 우리 현대사를 살아오며 돌아보는 중에 우리가 외디푸스의 속죄 과정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서양과 일본의 강요에 의해 나라의 문이 열리면서 우리나라는 동학혁명 전쟁과 민족 주권의 상실, 식민 통치와 민족적 수난, 분단과 전쟁, 그리고 8·15와 6·25에 이은 남북 냉전, 4·19와 5·16의 혁명과 쿠데타, 군부 독재와 호헌 운동 등 전례가 드문 환란과 사태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두 세대 후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선진 자유국가가 되었다. 이에 이르기 위한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 열정과 창의의 정신과 헌신은 아무리 자부해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그럼에도 내가 의아히 여기는 것은 경제 문화적으로 선진화하고 정치도 서구 수준으로 민주화하고 있음에도 그 통치자는 왜 불운을 면하지 못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렀을까 하는, 작지만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초대 ‘국부’는 하야 후 망명해야 했고 한국 근대화의 주축은 시해당해야 했으며 경제 성장을 유지하고 혹은 외교와 도시의 확장에 대응한 군부 출신 대통령은 감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민주주의를 서민의 일상으로까지 확장한 대통령은 자결했고 최근의 두 대통령 역시 부정과 실정으로 투옥 중이다. 물론 장기집권욕, 군사적 폭압, 부정이란 개인적 잘못이 분명하지만, 외디푸스의 운명을 생각하는 지금의 내게 그런 정치사적 곤욕은 그 불운한 통치자가 속죄자가 된 덕이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그들은 잘한 수고를 통해 우리를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그들의 잘못과 죄를 통해 우리를 깨우치고 좋은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한 것이 아닐까 자문하는 게 내가 역사를 너무 관대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역사는 현명한 통치자의 영도로 진보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 바라는 바와 달리 역행할 수도 있다. 거꾸로, 그처럼 우매한 왕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하지만 그 불행에 대한 저항이 더 멋진 역사를 이끌어오기도 한다. 우리의 많은 역사가 그 사실을 증거하지 않는가. 아마도 인간의 덕성과 역사의 진행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내가 역사허무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가? 그 자기 혐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성과 역사의 진행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굽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코로나 사태는 모든 인간이 벌거벗은 존재이고 서로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하나이고 본성적으로 서로 친구이며 또 친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21세기의 스핑크스인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리라”라는 역설적 결론을 곱씹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서구의 고전에서 읽은 것과 오늘의 현실에서 겪는 것 사이에서 그 거리감을 잴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