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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러진 손가락과 3만8600원짜리 아귀찜

등록 2021-06-11 13:20수정 2021-06-12 16:31

주문 들어온 음식을 제때 맞추기 위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배달 라이더. 연합뉴스
주문 들어온 음식을 제때 맞추기 위해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배달 라이더. 연합뉴스

[삶의 창] 김소민
자유기고가

지난 4월23일 저녁 7시, 우상택(38)씨는 전동킥보드를 타고 3만8600원짜리 아귀찜을 배달하는 중이었다. 쿠팡이츠에서 그날 받은 세번째 콜이었다. 완료하면 3860원을 번다. 그 전에 뛴 두 건으로 각각 3500원, 2600원을 벌었다. 도착 지점을 800m 앞두고 상택씨는 미끄러졌다. 손에서 피가 흘렀다. 배달 가방부터 봤다. 아귀찜은 멀쩡했다.

쿠팡이츠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담당자는 아귀찜의 상태를 물었다. 배달을 취소하면 음식값과 배달료를 차감할 거라고 했다. 상택씨는 배달하겠다고 답했다. 담당자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피 나는 손으로 고객에게 전화해 “늦어 죄송하다”고 했다. 사고 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엎어진 아귀찜을 수습한 줄로 고객이 오해해 주문을 취소할까 걱정됐다. 그러면 상택씨가 음식값을 물어야 한다. 피를 닦고 핸들이 망가진 킥보드를 끌고 걸었다. 이 고객은 불만 접수를 하지 않았다.

배달을 끝내고 상택씨는 약국에서 붕대와 파스를 샀다. 보조배터리를 부목 삼아 왼쪽 새끼손가락을 고정했다. 전동킥보드를 끌고 집까지 2시간여를 걸었다. 그는 “서글펐다”. 아무도 그에게 얼마나 다쳤는지 묻지 않았다.

홀로 사는 집에 돌아온 그는 뻗었다. 이튿날 손이 퉁퉁 부었다.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철심을 박았다. 쿠팡이츠는 그의 산재보험을 들지 않았다. 쿠팡이츠는 월 97시간 이상 일하거나 116만원 소득을 올려야 산재보험을 들어준다. 그는 배민라이더스로도 뛴다. 배민라이더스로 산재보험을 들었다. 두 곳에서 일하지만 산재보험은 한 업체밖에 못 든다. 법이 그렇단다.

지난해 12월 플랫폼 배달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일할 수 있어 기뻤다. 게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퀘스트’를 주면 그가 수행했다. 배달은 그가 16살 때부터 했던 일이다. 그해 그와 단둘이 사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아프기 전 어머니는 62-1번 버스를 타고 청소일을 나갔다. 62-1번은 이후 6411번으로 바뀌었다. 고 노회찬 의원은 한 연설에서 새벽 4시 6411번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향하는 청소노동자들을 ‘투명인간’이라 불렀다. ‘투명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게 정치가 할 일이라고 했다.

게임은 그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했다. 인공지능이 어떤 규칙으로 일을 배당하는지 상택씨는 알 수 없다. 그는 수당이 높지 않은 ‘똥콜’이 자주 떨어지는 게 자기가 콜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일까 생각했다. 그의 콜 수락률은 ‘96%’다. 그렇다고 콜을 거절할 수 없다. 평점이 낮아지면 일을 못 받게 될지 모른다. 수당은 매초, 지역에 따라 바뀌었다. 라이더들은 인공지능이 띄운 ‘할증’을 따라 움직였다.

그가 다친 날 저녁 뉴스는 달걀 한판 값이 7천원으로 올랐다는 소식 등을 전했다. 그가 다치기 전날인 22일 경기도 평택항에서 이선호(23)씨가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지만 이날도 그 전날도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선호씨가 숨지고 40일이 지나도록 평택항 컨테이너들에 대한 안전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달 뒤인 5월26일엔 쌍용씨앤비 공장에서 장창우(52)씨가 300㎏ 파지에 깔려 숨졌다. 회사는 28분 만에 업무를 재개했다. 상택씨는 깁스를 풀면 플랫폼에 접속해 “빡세게” 일할 계획이다. 일 못 하는 동안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그는 고 이선호씨의 아버지 이재훈씨의 인터뷰를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이선호 #기억합니다.” 그는 배달기사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티셔츠를 입었다. 우리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피 흘리는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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