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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의 끝은 어디인가요, 있기는 한가요?

등록 2021-06-10 14:38수정 2021-06-11 02:37

우주의 나이 138억년과 465억광년 거리에 있는 우주의 끝. 그런 말들을 자꾸만 읽고 또 중얼거려보고 있노라면, 단어가 형태소로, 낱자로, 마침내는 수많은 획으로 분해되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랑데부] 심채경ㅣ천문학자

누군가 내게 물었다.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요? 끝이 있기는 한가요?”

태양계 천체를 다루는 내가 우주의 크기 같은 것을 재보았을 리 없다. 우주라고 하면 별이나 블랙홀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나의 주제는 태양이라는 별 하나에 딸려 있는 작은 천체들이다. 요즘은 38만㎞ 정도 떨어져 있는 달에 어떤 관측기기를 보내면 달이라는 자연의 일부를 세세히 탐구해볼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한다. 가끔은 6억㎞ 거리의 유로파나 12억㎞ 떨어져 있는 타이탄의 환경을 상상한다. 수십억㎞ 멀리에 있는 명왕성이나 수십년 동안 220억㎞ 거리 너머까지 나아간 뒤에도 간헐적으로 지구에 신호를 보내오는 보이저 탐사선을 생각하기도 한다.

보이저호는 수년 전 태양의 영향권을 빠져나간 뒤 성간 공간을 가로지르며 전진하고 있다. 그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빛의 속도로 전송해도 21시간 뒤에나 도착한다. 보이저호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우리는 21시간 뒤에야 그 소식을 알게 된다. 지금의 보이저가 스물한시간 뒤의 지구인에게 전해올 소식은 무엇일까.

사실 그 정도 거리는 전 우주의 규모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보이저에 가장 가까운 별은 태양이고, 수년 내 배터리의 수명이 다해 지구와 교신이 끊길 때까지도 그럴 것이다. 별과 별 사이에는 광막한 공간이 놓여 있다. 그런데 우리 은하에는 태양 말고도 수천억개의 별이 있다. 그러면 우리 은하는 대체 얼마나 큰가. 온 우주에는 수천억개의 별을 품고 있는 은하가 수천억개 있다. 그러면 그 모든 은하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또 대체 얼마나 광대한가. 우주 전체를 생각하면 태양계 천체 같은 건 한군데로 합쳐보아도 눈에 띄지 않을, 티끌 같은 질량체일 뿐이다. 수십년을 항해해도 아직 태양 근처라면, 그 티끌 속에 사는 더더욱 티끌 같은 존재인 우리가 우주의 규모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측정한다는 것이 갑자기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천문학에서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년이다. 그때 출발한 빛 메시지가 138억년을 달려 오늘날의 우리에게 간신히 전해준 내용은, 우주가 어느 한곳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그 여파로 아직까지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의 우주는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138억년 전 출발한 우주 탄생의 메시지가 지구로 달려오는 동안에도 우주는 계속 팽창했을 것이다. 그걸 고려해 계산하면, 망원경 등을 이용해 관측 가능한 우주의 범위는 지구에서부터 약 465억광년 거리까지다. 그보다 더 멀리에서 지구로 달려오고 있는 정보가 더 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멀리서 오는 빛은 우리에게 닿지 못하고, 우리가 내뿜는 에너지도 우주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진다.

우주의 규모는 가만히 앉아 곱씹어볼수록 가늠하기가 어려워진다. 수천억개의 별과 수천억개의 은하, 우주의 나이 138억년과 465억광년 거리에 있는 우주의 끝. 그런 말들을 자꾸만 읽고 또 중얼거려보고 있노라면, 단어가 형태소로, 낱자로, 마침내는 수많은 획으로 분해되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우주의 끝을 논할 것도 없이, 아주 가까이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도 때로는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하고 그저 어디론가 흩어지곤 한다. 현실 속으로 다 스며들지 못한 무수한 말들은 광막한 우주 속으로 구불구불 흘러나간다. 비틀스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노래하듯이. 미처 다 붙잡지 못한 생각은 잠시 어딘가를 맴도는 듯하다가 제멋대로 뒹굴며 우주 너머 어딘가로 흩어져버린다. 그러나 이 곡을 쓴 존 레넌에게 우주가 황량하기만 하고 소통이 부재하는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주에 편재하는 슬픔과 기쁨, 웃음과 생명이 우리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진다니 말이다. 녹음된 지 40년 되던 날, 이 곡은 나사(NASA)의 심우주네트워크용 안테나를 통해 우주로 흘러나갔다. 주문을 외듯 명상의 말을 건네는 이 곡이 우주 속 어딘가로 흩어져 어느 외계인에게 가닿는 날도 올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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