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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외로움을 떨치려고

등록 2021-06-04 14:20수정 2021-06-05 14:10

[삶의 창] 정대건 l 소설가·영화감독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케이비에스(KBS)의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2021 청년 고독사 보고서> 편을 봤다.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가 더 이상 노년층의 문제만이 아님을 생생한 취재로 담아낸 다큐멘터리였다. 한때 심적으로 위태로운 시절을 보냈었기에 공감이 갔고, 만약 내가 그 힘들었던 시기에 가족들과 살고 있지 않았더라면… 하고 숙연해졌다.

그중 영국에 있다는 ‘외로움 담당 장관’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사회적 관계와 고립의 정도를 측정하는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아플 때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우울할 때 대화를 나눠줄 사람이 있는가. 돈이 필요할 때 빌려줄 사람이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가족 이외에는 ‘그렇다’는 답을 못 하겠다.

계속되는 코로나 시국에 주변 청년들을 둘러보면 외로움을 떨치는 각자의 방법들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서 클럽하우스를 들어가 봤다. 매일 밤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정 멤버처럼 출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 요즘 접속이 뜸한 사람의 소식을 아느냐며 서로 걱정하기도 했다. 1인가구 시대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불특정 다수 앞에서 말하는 게 성향에 맞지 않아 아주 가끔 접속하는 편이지만, 만약 혼자 살고 있었다면 나 또한 클럽하우스를 열심히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키보드 애호가인데,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의 키보드 게시판에 거의 상주하던 적이 있었다. 뉴비인 시절에는 고수들의 답변에 도움을 받았고, 이후 내 경험을 바탕으로 뉴비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링크를 달아주면서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왜 그렇게 진심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외로워서였다. 키보드를 여러 대 모으고 ‘덕질’하는 건 누군가 보기에 비생산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해에 내게는 정말로 그런 게 필요했었다. 글 쓰는 일 말고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기에 게시판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애정을 쏟고 위안받을 뭔가가 필요했던 거였다. 게시판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같은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힘이 됐다.

프리랜서 창작자로 아직 생존이 우선순위인 삶을 살고 있다 보니 내게 다른 것들은 후순위다. 가끔 혼자 먹는 밥이 지겨울 때가 있으면서도 별다른 용건 없이 친구와 시간 내서 밥 한 끼 먹을 여유가 없었다. 이런 점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여전히 청춘의 한때에 있다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그게 왜 청춘의 모습이어야 하는지 씁쓸하다. 나조차도 청춘을 일인분의 사람이 되기 전에 세상과 단절되어야 하는 시기, 견뎌야 하는 고치 속의 시기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외로움을 그저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겼었지만, 지금 당장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느슨한 취향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다. 나서서 일을 벌이지 않는 성격인 탓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숙원이기도 하다. 가령 일요일 밤이면 ‘다큐멘터리 3일’을 꼭 챙겨 보는데, 참 좋다며 이에 대해 대화 나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취향이 없는 사람에게 같이 수다를 떨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오픈채팅방에서도 ‘다큐멘터리 3일’ 덕후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기저기 최대한 이런 계획과 나의 취향을 말하고 다닐 계획이다. “느슨한 취향 공동체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밤마다 ‘다큐멘터리 3일’ 함께 볼 파티원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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