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집 1층 접견실 벽에 걸린 두개의 시계. 서울은 오전 11시46분, 평양은 오전 11시16분, 30분의 시차가 있다. 북이 광복·해방 70돌인 2015년 8월15일을 기해 표준시를 30분 늦춘 “평양시간”을 선포한 탓이다. 청와대 제공
광복·해방 70돌인 2015년 8월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표준시간을 30분 늦추고 “평양시간”이라 불렀다. 두 세기에 걸친 분단에도 ‘같은 시간’을 살던 남과 북의 시공간이 갈라졌다.
공식 설명은 이랬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표준시간까지 빼앗는 범죄행위를 감행했다. 일제의 백년 죄악을 결산하고…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존함으로 빛나는 백두산 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영원토록….”(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 599호, 2015년 8월5일 결의, 8월7일 발표)
평양시간 제정은 ‘일제 잔재 청산’ 조처라는 발표다. 말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옹색하다.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김일성 주석)와 “만고절세의 애국자”(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대에도 북은 일본과 같은 표준시를 썼다. 두 “영원한 수령”의 항일 의지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면, “평양시간” 제정에 “일제 백년 죄악 결산” 운운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질적 파장은 별다른 교류가 없는 북-일 사이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 나타났다. 남북이 함께 일하던 개성공단에선 평양시간 제정 뒤 첫 근무일인 2015년 8월17일(월) 남쪽 인력의 입출경·근무 시간 조정 등 크고 작은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표준시 변경을 발표한 것은 유감”이며 “남북 간 이질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는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발표했다. 한동안 “오후 3시 남북회담, 왜 3시30분에 열렸나?” 따위의 얄궂은 기사가 쏟아졌다.
평양시간은 993일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시간을 애초 표준시로 돌려놓겠다고 약속한 뒤, “평양시간을 현재의 시간보다 30분 앞선 시간”으로 고쳐 “주체107(2018)년 5월5일부터 적용”한다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정령 2232호’(2018년 4월30일)가 발표됐다.
<노동신문>은 2018년 4월30일치 1면 기사에서 애초 표준시로 돌아간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는 수뇌(정상)회담 장소에 평양시간과 서울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각각 걸려 있는 것을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하시며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언급하셨다. …북과 남이 하나로 된다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르고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합치고 맞춰나가는 과정이라며 민족의 화해단합의 첫 실행 조치로 현재 조선반도에 존재하는 두개의 시간을 통일하는 것부터 해나가실 결심을 피력하셨다.”
김정은 위원장의 표준시 복원 조처는 “민족의 화해단합”과 “통일”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반도에 두개의 시간”을 만든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 위원장 자신이다.
“평양시간”은 한때의 소동이 아니다. 2015년 김 위원장은 왜 북의 표준시를 30분 늦췄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는 과정은, 김 위원장이 구상하는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하는 일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2015년은 광복·해방 70돌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활동”을 “영도”하는 “조선노동당”(사회주의헌법 11조) 창건 70돌이다. 어쩌면 평양시간 제정의 진짜 이유는 “일제 백년 죄악 결산”보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불멸의 존함으로 빛나는 백두산 대국의 존엄과 위용을 영원토록”이라는 문구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남북의 현격한 종합 국력 차이 탓에 북한 주도 통일의 현실성이 거의 없다는 안팎의 평가를 전제할 때, “백두산 대국 영원토록”은 통일보다 북이 오랜 세월 극구 비난해온 “두개 조선”의 병립 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2021년 1월5일 노동당 8차 대회 연설에서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를 공식 선포했다. 김정은의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란 “국가의 존엄과 지위를 높이기 위한 결사적인 투쟁의 결과로써 탄생한 자존과 번영의 새시대”다.
김정은의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김정일의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민족’을 ‘국가’로 대체한 게 핵심이다. 민족지상주의에 가까운 북한의 역사에서 ‘국가’를 전면에 내세운 조어법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엔 없던 김정은 시대의 도드라진 특징이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11월 <노동신문> 사설과 정론에 처음 등장했다. “자력갱생은 조선혁명의 본성”이라며 “주체철”(철 생산에 코크스 대신 무연탄·갈탄 사용)과 “탄소하나화학공업”(석탄화학으로 석유화학 대체)을 강조한 <노동신문> 정론(2017년 11월20일 2면)이 처음이고,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의 근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조선인민의 대승리”라 자평한 <노동신문> 1면 사설(2017년 11월30일)이 두번째다. 김정은 위원장한테 “자존”과 “번영”은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의 양대 축인데, ‘핵무력’은 자존의 기반이고 주체철·탄소하나화학공업은 주체형·자력갱생식 번영의 동력이다. 주체철·탄소하나화학공업은 유엔 등의 고강도 제재로 원유·코크스 등의 수입이 어려운 상황에 자력갱생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인데, “고비용의 과도한 국산화 추진으로 경제적 비효율이 높고 남북경협 표준화에 장애 요인”(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라는 우려 섞인 분석이 많다.
이후 별다른 공개 언급이 없다가,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신념화를 강조한 김정은 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를 계기로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자” 따위의 글(2019년 1월21일 <노동신문> 1면 사설)들이 쏟아졌다.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재 완화’와 대외관계 개선의 꿈에 들떠 있던 때다.
김정은의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김정일의 “우리 민족제일주의”와 비교해 연속과 단절의 측면을 모두 품고 있다. ‘민족’을 ‘국가’로 대체한 건 명백한 단절이다. ‘민족’엔 남쪽이 포함되지만, ‘국가’엔 남쪽의 자리가 없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남과 북의 분리 정립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셈이다. <노동신문>이 “사회주의강국 건설의 높이에 맞는 국풍 확립”을 강조하며 “국기와 국장, 애국가를 신성하게 대해야 한다”고 반복 주문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2020년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 땐 당 공식 행사에선 처음으로 “람홍색 공화국 기발” 게양식이 김일성광장에서 있었다. 당(노동당)이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를 세워 국가의 모든 활동을 “영도”하는 ‘당·국가 체제’라는 자기 인식에 비춰, 당 창건일의 국기 게양식은 분명 “의미심장한 이벤트”(정부 핵심 관계자)다.
993일간의 “평양시간”과 “우리 국가제일주의” 담론의 위상 강화 추세를 겹쳐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꿈꾸는 미래 한반도의 밑그림이 어슴푸레하게 드러난다. 김일성 주석이 오랜 세월 적대시해온 “투 코리아” 지향이다. 이는 남북 공존의 국제적 기반인 유엔 가입 취지를 따른 긍정적 변화이자, “통일지향 특수관계”를 다짐한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비춰 ‘분단 영구화’를 가리키는 위태로운 방향등이다.
다만 북녘의 ‘투 코리아’ 지향은 김정은 시대만의 돌출 현상은 아니다. 2015년 ‘평양시간’에 앞서, 김일성 주석의 생년인 1912년을 기점으로 삼은 “주체 연호” 제정이 1997년에 있었다. 김정일의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우리 민족”이란 “김일성민족”(1994년 10월16일, <김정일선집18>)이며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 위대한 당의 영도를 받으며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제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1989년 12월28일, <김정일선집13>). 그 “우리 민족”에 남쪽 5400만 시민이 “나도”라고 손을 흔들 까닭이 없다. “우리 수령제일주의”(<노동신문> 2021년 4월1일 1면 논설)이자 “김일성·김정일조선제일주의”(<노동신문> 2019년 1월21일 1면 사설)라 자임한 김정은의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김정일의 “우리 민족제일주의”는 남과 북의 분리 병립, 곧 ‘투 코리아’ 지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연속적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려 하는 북녘과 함께, 오랜 갈등과 적대를 뒤로하고 공존·번영을 꽃피워 평화와 통일의 너른 바다로 나아가려면 배려심 충만하고 사려 깊은 전략적 고민이 절실한 때다.
이제훈 ㅣ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1993년 한겨레에 들어와 1998년부터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시작과 중단, 다섯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여섯 차례의 북한 핵시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세 승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사상 첫 남·북·미 정상 회동 등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해왔다. 반전·반핵·평화의 한반도와 남북 8천만 시민·인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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