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한희 ㅣ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 대표
요새 진행 중인 소송이 하나 있다. 소송대리인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차별을 받은 피해자로서 제기한 소송이다. 2017년에 여성 성소수자 생활체육대회가 서울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자 동대문구에서 대관을 취소한 일이 있었다. 나는 당시 체육대회의 기획단원으로서, 다른 기획단원과 함께 동대문구의 이러한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그런데 소송을 진행할 때마다 과연 나의 차별 경험이 법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지 불안을 느낀다. 차별 가해자가 으레 그러하듯이, 이 사건에서도 동대문구 역시 절대 자신들이 성소수자 행사를 차별한 것은 아니며, 공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대관을 취소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판사는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우리들한테 동대문구가 정말 차별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현재의 민사소송법하에서는 원고가 이 모든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의 내심 의도를 어떻게, 어디까지 입증 가능한 걸까?
사실 이 사건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단한 사건이다. 관련 증거도 상당하다. 그리고 소송 당사자인 나 자신이 법적 지식을 지닌 변호사이다. 그럼에도 나의 차별 경험이, 성소수자 체육대회가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궤변을 듣고 일방적으로 대관을 취소당했으며 그 결과 다른 체육관을 대관할 때 성소수자 행사라는 것을 감추어야 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이러한 차별의 피해가 정말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안해지곤 한다. 그렇다면 하물며 법적 지식이 없는, 충분한 자료를 갖추지 못한 차별 피해자들은 어떻게 자신이 겪은 일이 차별이라고 알리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차별이 해소되고 예방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겪는 무수한 차별 경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고 또 이를 사회가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현존하는 법과 제도는 이러한 조건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그 사유가 한정되어 있어 교차적이고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여러 사유를 다루지만 이에 따른 인권위의 권고가 강제성을 갖지 못한다. 현재의 소송법하에서는 차별 피해자가 상대방의 차별 의도를 온전히 입증해야만 하고, 또 소송 제기로 인해 불이익 조치를 당해도 구제받기가 어렵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는 설령 개인이 차별을 당했어도,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 차별의 피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차별 호소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포괄적인 차별금지 사유를 규정하고 실효성 있는 구제책을 제공하며 입증책임의 전환, 불이익 조치 금지 등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가능케 하는 등의 규정을 갖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절실한 것이다. 차별을 차별로서 인정받게 하는 법, 차별금지법은 바로 그러한 법이기에 무엇보다 중대하며 시급한 이 사회의 과제이다.
지난 20일 갤럽이 한 여론조사를 보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질문에 81%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미 시민들은 누구도 어떠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이제는 정치가 이러한 시민들의 합의에 위반되는 차별들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4일부터 국회 국민동의청원 페이지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 10만 행동을 시작했다. 이번 행동을 통해 모일 시민 10만명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차별의 현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우리 손으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내겠다는 힘찬 발걸음이다. 이러한 행보에 모든 이들이 동참해주길 바란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가 더는 자신의 책무를 외면하지 말고, 차별을 차별로 드러나게 하는 법으로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줄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