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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단지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들

등록 2021-05-21 13:29수정 2021-05-22 16:55

[삶의 창] 이명석ㅣ문화비평가

나는 여행사 깃발처럼 눈에 잘 뜨이는 사람이다. 동호회에서 ‘마로니에공원 이명석 앞’으로 약속을 정하면 신입들도 잘 찾아온다. 친구 말로는 자기도 같이 다닐 땐 실감을 못 했단다. 그런데 한번은 길 건너에서 나를 봤는데,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행인들이 나를 지나치자마자 일제히 돌아서 쳐다보더라나. 한국인들은 고정관념이 강해 그런 게 아닐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뉴욕, 홍콩처럼 여러 인종에 별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본 뒤 결론을 내렸다. 전세계의 미취학 아동들, “사람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아니야”라는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인간 깃발에겐 장단점이 있다. 동네에 식당이 생겼는데 개업 6개월 만에 처음 갔다. “언제 오시나 했어요. 호호.” 다시 6개월 뒤에 갔다.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단골 되기가 쉽다.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아이들에게 강의를 할 땐 쉽게 주목을 끈다. 뭔가 배울 때는 강사가 “제일 먼저 해볼 사람” 하면 그냥 손을 든다. 가만히 있어도 손 든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러니 나쁜 짓은 못 한다. “요새 놀이터에서 이상한 남자가 그림 그리던데?” “아 그 사람, 지난주에 수원 야시장에서 봤어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만날 때 반응하는 패턴이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여기 국수 두 그릇 주세요” 했더니, 할머니가 “아이고, 한국말 잘하네. 어디서 배웠어?” 하신다. “저 한국사람이에요.” “누굴 속여? 내가 장사를 몇십년 했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모든 계약을 마치고, 굳이 물어본다. “그런데 무슨 일 하세요?” 글 쓴다고 했더니 “아이고, 예술가시네. 어쩐지.”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진 상자 속에 분류하고자 한다. 이상한 것들은 ‘외국인’, ‘예술가’ 같은 상자에 담으면 그나마 안심이 되나 보다. 하지만 아무 데도 넣을 방법이 없으면 공포를 느낀다. 전철에서 긴 머리의 나를 쫓아와 얼굴을 본 아이들이 소리쳤다. “아빠, 여자가 수염 났어!”

오래전엔 교포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국에 오니 너무 좋아. 아무도 날 안 쳐다보잖아.” 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다 쳐다보던데?” 그가 되물었다. “너는 그럴 때 위협을 느낀 적 있어?” “전혀 없진 않지만, 오히려 안전하기도 해. 소매치기도 나는 안 건드릴걸?” 나의 농담에 친구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나도 해외를 다니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약한 소수의 외모를 하고 스킨헤드들이 힐끔거리는 골목을 걷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리고 얼마 전 미국 애틀랜타에서 한인 여성 4명이 살해당했을 때 많이 미안했다. 친구가 바로 그 도시에서 자랐다.

세상에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눈에 뜨이는 사람들이 있다. 놀이터 구석에 앉은 짙은 피부색의 아이, 하이힐과 치마 차림의 남학생, 휠체어를 타고 클럽에 온 사람, 문신으로 몸을 덮고 수영교실에 온 여자… 어떤 이들은 그들을 불편해하며,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라고, 무리의 힘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왜 그러냐 물어보면, 이상한 모습이니 이상한 행동을 할 거라는 이상한 이유를 댄다.

낯선 외모에 대한 본능적 불안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게 문명이다. 그 문명이 위태하기에, 눈에 뜨이는 사람들끼리의 연대가 절실하다. 우리들 인간 네온사인들은, 누군가 조금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해코지당하지 않도록 서로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더 별난 외모들이 늘어나, 세상의 시선을 분산시켜주는 걸 환영한다. 누군가 동참하고자 한다면 입회원서는 필요 없다. 이렇게 하고 나가도 될까, 싶은 차림으로 길을 나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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