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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주복이 필요해, 우리에겐

등록 2021-05-20 14:06수정 2021-05-21 02:35

“왜냐하면 우주복 밖은 우주니까요.” 그리고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떠다니기 때문에 뭐든지 묶어둔다고 말한다. 물건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우주비행사와 비슷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심채경의 랑데부] 심채경ㅣ천문학자

음악가 도재명의 작품 중에 ‘토성의 영향 아래’라는 곡이 있다. 토성이 뭘 어쨌단 말인가.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는 토성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단 말인가.

나는 확실히 토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대학원에서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을 연구 주제로 삼아 졸업하고 천문학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디 전공자뿐이랴.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는 처음 그 고리를 발견했던 갈릴레이부터 오늘날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아름다운 토성 사진에 감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외계 생명체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모으는 토성의 위성들은 또 어떤가. 위성 엔켈라두스의 표면을 덮은 얼음층 아래에는 지구에서처럼 소금 성분과 영양분이 든 바다가 있으리라 추정된다. 그런 내용을 접하고 나면 생명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온 우주에서 우리는 유일한 존재인가 같은 걸 생각하게 된다. 그게 다 토성의 영향이다.

점성술에서 토성은 흉(凶)을 뜻한다고 한다. 너무 차갑고 건조해 살기 어렵다고 보아서다. 지구에 비해 토성은 태양으로부터 열배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차가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조하지는 않다. 토성의 대기에도 수분이 있고, 고리는 수없이 많은 얼음덩어리의 집합이다. 토성의 위성들도 수분을 품고 있으며, 특히 엔켈라두스의 표면 얼음이 갈라진 틈새에서는 간헐천처럼 물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니까 점성술에서 보는 토성의 영향력이란 우리가 토성을, 태양계를 아직 잘 몰랐을 때 가졌던 선입견이다. 점성술에서는 토성의 환경이 척박하고 태양계 끝에 있어 외롭다고 보지만, 망원경이 발명된 후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다. 토성보다 먼 곳에 천왕성이 있고 더 멀리에는 해왕성이 있다는 것을.

‘토성의 영향 아래’라는 제목은 수전 손택이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베냐민에 대해 쓴 에세이 <우울한 열정>(Under the sign of Saturn)의 원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베냐민은 자신이 토성의 영향 아래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하곤 했다. 토성은 공전주기가 가장 긴 행성이라며, 느리고 지연되는 느낌을 자칭 우유부단하고 둔감한 자신에게 투영했다. 그런데 베냐민이 태어나기 수십년도 전, 토성보다 멀리 있는 두 행성, 천왕성,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이들의 공전주기가 토성에 비해 한참 길다는 것도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의 생애에 천왕성이나 해왕성의 영향은 미처 가닿지 못한 걸 보면 역시 그는 스스로가 표현한 대로 느리고 둔감한 존재였던가 싶기도 하다. 물론 사상가의 시선을 과학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아둔한 일이겠지만.

도재명의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그린 건 폐곡선이 아니었다.” 만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닫힌곡선을 따라 움직인다면 언젠가 다시, ‘그때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구를 포함해 많은 태양계 천체의 궤도가 그렇다. 공전주기마다 하나의 타원을 그리기도 하고, 매번 조금씩 다른 궤도를 돌며 꽃잎 같은 여러개의 타원으로 구성된 커다란 폐곡선을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열린곡선을 따르는 천체는 다르다. 포물선이나 쌍곡선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로 한번 다가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어떤 무엇을 만나고자 아무리 달려도 다시는 마주칠 수 없다면, 그래서 우울과 같은 감정에만 자꾸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때 스스로를 감싸고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일 것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유인 임무를 다룬 다큐멘터리 <아이맥스: 허블>에서 우주비행사 마이클 마시미노는 우주선 밖으로 나갈 때 우주복과 헬멧을 단단히 착용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우주복 밖은 우주니까요.” 그리고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떠다니기 때문에 뭐든지 묶어둔다고 말한다. 물건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우주비행사와 비슷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숨 쉴 수 있게 하고 ‘이불 밖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면서도 나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돕는, 단단하고도 유연한, 마음의 우주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주처럼 넓은 세상을 헤매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의 궤도를 폐곡선으로 유지시켜줄 닻을 어딘가에 내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원할 때, 토성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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