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한겨레]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창간 서른세돌을 맞은 <한겨레>는 17일부터 디지털 후원회원제를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1만원이라도 매달 후원하는 일은 공감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후원회원이 되어달라는 호소는 한겨레가 더 신뢰받는 언론이 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김현대 발행인은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을수록 언론의 신뢰를 향한 간절함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라며 “누구도 편들지 않고 오로지 진실 보도를 하는 독보적인 신뢰언론 한겨레의 길을 꼭 열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국민주 신문 한겨레는 창간 이래 전문가나 기자들이 평가한 국내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독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주 정파성 시비가 따랐다. 근래 들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디지털 환경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허물어지고, 정보 생산과 유통에서 언론이 갖고 있던 독점권이 약해지면서 신뢰까지 하락하는 것은 세계가 함께 겪는 구조 변동이다. 여기에 더해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진보개혁 진영이 분열하고, 검찰개혁 논란으로 정치적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한겨레 보도에 대한 독자의 날 선 반응이 대립하는 양쪽에서 나오고 있다. 한겨레의 후원회원제는 이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부과한 ‘신뢰의 책무’라 할 수 있다. 김현대 발행인이 이를 두고 “전방위적인 한겨레 변화 프로젝트”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 언론이 어떻게 하면 독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동어반복 같지만, 신뢰는 믿음직한 일을 반복할 때 생긴다. 언론은 품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때 믿음직하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파헤치며, 윤리적이고, 전문적이며, 공정한 보도가 독자가 믿고 의지하는 저널리즘일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은 저널리즘이냐를 따지면 간단하지 않다. 열명에게 물으면 모두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독일 언론학자 슈테판 루스몰이 “저널리즘의 품질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벽에 못으로 푸딩을 박으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 것은 이런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원론적 질문보다는 실천적 지침이 필요한 언론은 규범적으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정해 이를 지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품질을 관리한다. 언론단체와 개별 언론사가 가진 윤리규정이나 취재보도준칙을 잘 지키는 것은 신뢰언론을 향한 첫걸음이다. 신뢰는 ‘관계재’이므로 여기에 더해 독자와 열린 자세로 소통하고, 취재 및 보도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잘못이 드러나면 정정하고 사과하는 솔직함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고민이다. 신뢰의 열쇠를 가진 독자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남아 있다. 올해 초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미국, 영국, 인도, 브라질 독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내놓은 연구보고서를 보면, ‘뉴스가 믿을 만하다’는 의미가 독자에겐 약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부터 익숙한 언론사 브랜드나 평판이었는데, 온라인 뉴스를 소비할 때도 여전히 중요한 선호의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뉴스의 생산 과정이나 저널리즘 관행은 독자가 잘 모르기도 하지만, 신뢰를 평가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보도의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에 대해 말은 하지만, 무엇이 균형 잡히고 공정한지를 판단하는 대상이나 방식은 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졌다.
이 조사에서도 언급됐듯이 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신뢰할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한국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나라일수록 독자는 자신과 의견이 맞는 언론을 선호하고 그렇지 않은 곳을 불신한다. 이런 경향은 신뢰언론을 추구하는 한겨레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독자에게 영합하지도, 맞서지도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른 독자까지 납득하게 하는 설득의 고민과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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