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사라진 ‘외교행낭’을 찾아서

등록 2021-05-17 16:35수정 2021-05-18 18:37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으로부터 부인의 도자기 반입 및 판매 과정에서 불법 의혹 관련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으로부터 부인의 도자기 반입 및 판매 과정에서 불법 의혹 관련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이주현 ㅣ 정치부장

반성부터 하겠다.

13일 오후 5시1분에 출고된 ‘낙마명단 나란히 올랐던 임·박…박준영만 사퇴한 까닭은?’ 기사에서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가 외교행낭으로 도자기를 들여왔다’고 표현한 것은 사실과 맞지 않다.

오류를 인지하게 된 건 13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 간의 입씨름이 알려지면서다. 이날 설전은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의사진행발언에서 박 후보자의 도자기 사건을 놓고 “외교행낭을 이용한 부인의 밀수 행위”라고 말하자 문 의원이 정의당 의원석으로 달려가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반말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류 의원의 조건반사적 대응과 문 의원의 막말이 불꽃을 튀겼다.

하지만 ‘연장자라고 꼰대질하지 말자’는 교훈으로만 넘길 일은 아니다. 이참에 정보의 선정적 속성과 정치적 조건이 맞물리며 팩트가 부풀려져 왜곡되는 회로의 ‘전형성’을 점검하는 게 정치와 언론의 발전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발단은 지난 1일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이 주영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박 후보자가 귀국길에 대량의 도자기를 세관 신고 없이 외교관 이삿짐으로 들여와 도소매업 허가를 받지 않고 판매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다. 290여분간 진행된 4일 인사청문회 회의록을 검색해보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결같이 ‘외교관 이삿짐’을 질타한다. 다만 “북한이 외교관 행낭을 이용해 밀수했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어봤어요. 공정을 외치는 우리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관이 이렇게 밀반입을 했을 거라는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이거 밀수 아닙니까”라는 김선교 의원의 발언은 있다.

‘박 후보자가 외교행낭에 도자기를 들여왔다’는 주장은 5월3일 저녁 방송 뉴스에 나온 데 이어 청문회 당일인 4일 아침 박원석 정의당 사무총장의 인터뷰에 다시 등장한다. 박 총장은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 정도 규모의 도자기를 외교행낭에 포함시켜서 가고 온 거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다는 걸 몰랐다면 저는 그건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8일엔 ‘해양수산부도 박 후보자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기사가 꼬리를 물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실에서 해수부로부터 ‘재외공관에 파견 근무한 해수부 공무원이 대량 물품을 구매해 외교행낭을 통해 국내로 반입해 판매하면 국가공무원법 등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는 답변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수부는 일반론을 설명했을 뿐이었고, 국민의힘도 ‘외교행낭’은 주장하지 않았다. 단지 팩트와 팩트의 연결 고리를 교묘하게 엮은 것이었다.

해수부가 곧 “박 후보자는 해외이사대행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국내로 배송했다”고 보도자료를 냈지만 마침 토요일이라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국민 눈높이”를 고심한 여당은 공개적인 시시비비 가리기를 포기하고 입을 닫았다. 정의당이 박 후보자 사퇴 당일까지 ‘외교행낭’을 일관되게 주장한 데는 이런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배 원내대표에게 물어봤더니, 세관 신고 없이 도자기를 반입·판매한 것 자체가 불법이므로 ‘외교행낭’에 대해 별도로 사과할 뜻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배 원내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의사진행발언 동영상이 국회 누리집 영상회의록과 ‘살짝’ 다르다. “외교행낭을 통한 부인의 밀수 행위”가 그냥 “부인의 밀수 행위”로 편집돼 있다.

외교관은 이사 비용에 정부 지원을 받으니 국민 세금으로 도자기를 반입해 판매까지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수집한 도자기를 공적인 업무로 제한된 외교행낭에 넣어 반입하는 것과 이사 화물로 실어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외교행낭을 이용했다면 ‘실수’나 ‘공사 구분’을 넘어 범죄적 행동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후배 기자가 쓴 기사를 데스킹하다, ‘외교행낭’을 추가하고 말았다. ‘이사 화물’이더라도 편들어줄 생각은 없지만, 나의 실수를 그냥 넘겨버리기엔 뒤꼭지가 뜨끈뜨끈했다. 정의당도 민주당 의원의 막말에 대한 사과는 제대로 받되, 외교행낭의 오류 역시 솔직하게 바로잡는 게 좋겠다.

edig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1.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오너 리더십’의 한계, 삼성만 문제인가? [아침햇발] 2.

‘오너 리더십’의 한계, 삼성만 문제인가? [아침햇발]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3.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사설] 임박한 북 참전, 말려들지 않는 게 ‘국가 안보’다 4.

[사설] 임박한 북 참전, 말려들지 않는 게 ‘국가 안보’다

우크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5.

우크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