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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프라이버시 목장의 결투’ / 구본권

등록 2021-05-03 15:51수정 2021-05-04 02:38

시가총액(2조2천억달러) 1위 기업 애플과 월 이용자 30억명의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 결투를 벌이고 있다. 명분은 각각 ‘프라이버시 보호’와 ‘자유로운 인터넷’이다. 대결 결과는 두 기업의 고객을 넘어 인터넷 기업과 이용자 전반에 광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발단은 지난달 26일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의 운영체제(iOS 14.5)를 업데이트하면서 제공한 ‘앱 추적 투명성’ 기능이다. 아이폰·아이패드에서 사용 중인 앱·웹사이트가 이용자의 검색이나 앱 사용 기록을 추적할 때 ‘팝업 창’을 띄워 동의를 받도록 하는 기능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은 방문 기록 등 이용자 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광고를 해왔다. 효율성 높은 광고이지만 이용자로서는 제3자가 자신의 이용 기록을 활용하는 사실에 대해 고지받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광고 과녁’이 되는 셈이다.

‘앱 추적 투명성’ 업데이트 이후 “이 앱이 다른 회사의 앱 및 웹사이트에 걸친 사용자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라는 팝업이 뜨는데 업계에선 대부분이 ‘추적 금지’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매출 90%를 광고에 의존하는 페이스북으로서는 치명적 타격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말부터 광고를 통해 애플을 비판해오고 있다. 애플의 정책은 자유로운 인터넷을 저해하고 타깃 광고에 의존하는 소기업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주장이다.

두 기업의 사업 모델은 딴판이다. 애플은 고가의 하드웨어 판매를 통해 고객에게 안전한 인터넷 이용을 보장하고, 페이스북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자 사생활 정보 거래와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이다. 애플은 자사 기기의 가치를 높이고 페이스북은 수억명에게 도달하기 위해 그동안 상대 제품에 깊이 의존해왔는데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배경엔 소셜미디어에서 묵살되어온 이용자 프라이버시와 이를 방치, 악용해온 기업들이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데이터 분석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빼내 타깃 정치광고로 활용한 사실이 2018년 드러나 문제가 됐다. ‘앱 추적 투명성’ 공방은 사업 모델이 다른 기업들이 수익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지만, 이용자들로서는 몰랐던 ‘정보 주체’로서의 권리에 눈뜨는 반가운 계기다.

구본권 ㅣ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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