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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욕처럼 남은 목숨 / 정영목

등록 2021-04-30 14:28수정 2021-05-01 16:30

정영목ㅣ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윤선애의 음반 <민주주의의 노래>가 나왔다는 소식에 이건 엘피로 사서 김민기와 노찾사 옆에 꽂아 놓고 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예약 구매를 했건만 발송이 머나먼 유월이라 유튜브에 올라온 곡들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대단한 팬인 듯 말을 꺼냈지만 그간 공연에 드문드문 2.5번 간 수준이니 남 앞에서 팬이라 자처하기는 민망하고 다만 팬심을 잃은 적은 없다는 자부심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0.5를 붙인 것은, 얼마 전 <한겨레>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 짚어봐도 그의 전설적인 아크로폴리스 데뷔 현장에 내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듣는 바람에 있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헛갈리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설사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 해도, 윤선애가 졸지에 그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을지언정 엄밀히 말해 그것이 그의 공연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공연을 한 것은 한참 뒤일 것이며, 그래서 그전에 익명일 때 어딘가에서 몇번은 그의 노래를 들었을 것이라고, 따라서 들은 것만 따지면 한 손으로는 다 셀 수 없을 거라고 셈을 고치곤 한다.

그렇다 해도 팬 자격에 미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는데, 귀 밝은 사람은 웃을 일이지만, 그것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 2>(1989)에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한동안 굳게 믿고 열심히 들었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 그의 가슴을 후비는 절창을 양껏 듣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변명을 하자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에는 재킷에건 속지에건 가수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자리가 빈 단체 사진을 넣은 재킷 디자인이 암시하듯 그것은 아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는 아름다운 익명성이었을 것이다. 지금 윤선애의 목소리 또한 자기 나름의 고난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할 일을 했고 또 지금도 하는 익명의 수많은 청중과 함께 살며 성숙해온 느낌을 준다.

그때 그 음반에서 애청하던 익명의 ‘오월의 노래’를 이번에 공들인 윤선애 버전으로 듣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김의철의 기타와 어우러진 버전은 <아름다운 이야기>(2009)에 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가 부르지 않았을 리야 없겠지만 음원으로는 찾기 힘들던 ‘진달래’를 듣게 된 것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4>(1994)에 실린 김은희의 노래도 풋풋하면서 절절하지만 윤선애의 ‘진달래’ 또한 간절했던 터다. ‘진달래’와 ‘오월의 노래’는 사월이 오월로 이어지듯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영도의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은 문승현의 “묘비 없는 무덤에 큰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의 이 노래 드리오”(속지 가사에는 “목숨에”로 나오지만 “목숨의”라고 우기고 싶다)와 손을 맞잡고 있다.

이것은 밤과 눈물의 노래, 함께 부르기보다는 혼자 부르거나 듣는 노래였다. 봄볕 내리는 날 눈이 부신 어떤 절대적인 것과 마주한 뒤 어두운 방에서 초라한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배우는 노래였다. 이때 마음에 새겨진 부끄러움이 아마도 많은 사람이 꽤 긴 세월 공감하고 공유하던 염치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이 노래들이 <민주주의의 노래>에 수록된 것은 민주주의가 아스팔트 위의 구호이기도 했지만, 각 사람의 그런 자기 성찰에서 피어난 것이기도 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뜻깊다.

그러니,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인 지금, “욕처럼 남은 여기 죽지 않은 목숨”이라는 가사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나이에 다다른 많은 이가 눈물만이 아니라 눈물샘마저 마른 것은 아닌지 더듬어보려 할 때 윤선애 노래만큼 좋은 벗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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