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대기업의 전횡과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제쳐두고 노동자 내부 격차만으로 사회 불평등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박권일ㅣ사회비평가
어느 사회건 ‘내부의 적’을 설정해 갈등을 설명하고 피지배집단의 분열을 조장하는 사이비 갈등 담론이 있다. 한국에서 그것은 오랫동안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이라는 말로 호도되어온 매카시즘(‘빨갱이’ 혐오)과 호남 혐오였다. 냉전이 끝나고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옅어지자 매카시즘과 호남 혐오는 ‘약발’이 떨어졌고 그 자리를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이 대체하는 중이다. 물론 이 ‘갈등’ 역시 실제 적대와 혐오를 은폐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한국의 불평등을 만들어낸 원흉이자 위기 요소로 ‘한국형 위계구조’를 꼽고 그 중심에 ‘86세대’와 연공급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연공급제는 쉽게 말해 연차(나이)에 따른 임금지급 시스템이다. 2007년 출간된 <88만원 세대>가 주로 ‘피해 집단’, 20대 알바·비정규직의 열악한 상황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철승의 작업은 ‘수혜 집단’에 집중하며 분석의 밀도 또한 상당히 높다. 그는 대기업 임원 비율, 국회의원 비율 등등의 다양한 근거를 들어 86세대 상층이 다른 세대에 비해 권력과 자원을 과도하게 차지하고 있음을 보이면서 이런 특정 세대의 권력 독점이 한국 사회 불평등의 주요인이라고 주장한다.
86세대 정치 엘리트의 ‘내로남불’ 행태와 독선에 질릴 대로 질린 사람들에게, 그들 세대가 왜 ‘암흑의 핵심’인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주장은 ‘사이다’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심정으로는 백번 공감한다. “인간해방” “사회변혁”을 입에 달고 살던 저들이 일상에서 보이는 탐욕과 위선에 헛구역질한 적,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과 직관이 곧 사실이나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철승은 <불평등의 세대>에서 “86세대가 기득권의 성벽을 쌓았다”고 비판한다. 그 근거로 지금 20대가 대학졸업장이라는 “상층에 진입할 자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86세대 대학졸업자만큼 소득 상층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과연 그의 주장은 타당할까? 1980년대 대학진학률은 약 20~30%대였다. 반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진학률은 80%를 훌쩍 넘는다. 열명 중 두세명만 대학 가던 시절에 비해, 열명 중 여덟명이 대학 가는 시대 대학졸업장의 가치(희소성)는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학졸업장을 가진 20대는 대학졸업장을 가진 86세대보다 상층부 진입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즉, 이철승이 근거로 제시하는 대졸자의 세대별 상층 진입률은 86세대의 ‘기득권 성벽 쌓기’를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학계에서 나온 반박도 있다. 김창환·김태호의 2020년 연구(‘세대 불평등은 증가하였는가’)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9년 동안 세대 간 불평등의 주된 요인은 86세대가 아니라 저학력 노인층의 증가 때문이다. 86세대의 소득은 이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다른 세대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지만 이들의 소득 증가는 소득상층에서가 아니라 소득하층에서 일어났다.
86세대 최상층의 권력 과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불평등의 주원인이 86세대의 탐욕이나 독점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면의 한계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어렵지만 불평등의 주원인이 연공급제라 단언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전횡과 정부의 정책 실패를 제쳐두고 노동자 내부 격차만으로 사회 불평등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사실 86세대, 특히 그 세대 엘리트 그룹은 경제적 불평등보다 젠더 의제에서 부각되어야 할 집단이다. 안희정 도지사 성폭력 사건과 박원순 시장 성추행 사건을 통해 공히 드러난 사실은 86세대의 지독히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었다.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여성 정치인들까지 가해자 편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거기서 예외가 아님이 밝혀졌다. 86세대의 특징은, 단순히 성인지 감수성이 낮다기보다 정치적 진영에 따라 감수성이 선택적으로 높아지거나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도덕적 우월감까지 강해서 더욱 위험하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 처리에서 리더가 누구인지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히 ‘팔육 리스크’(86’s Risk)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강조하건대 이는 86세대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극소수 엘리트와 권력 집중형 조직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다 때려잡는 망치가 아니라 하나씩 정확히 뽑아낼 핀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