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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프로파일러 권일용]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등록 2021-04-15 15:35수정 2021-04-16 02:34

| 권일용 전직 경찰·범죄학 박사

2009년 9월 중등도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15살)과 단둘이 살고 있는 아버지 김아무개(50)씨는 4일 만에 지방에 화물을 운송하고 돌아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경악했다. 모르는 남자가 숨진 채 누워 있고 아들은 그 옆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정신연령은 3~7살 미만으로 보호자 없이 생활하기 어려웠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며칠씩 지방을 다녀야 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단칸방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그 장소에서 사망하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출동한 과학수사대(CSI)는 면밀한 현장감식을 실시하고 혈흔 형태 분석(BPA)을 통해 현장 상황을 재구성하였다. 그 결과, 사망자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고 베개를 등에 대고 벽에 기대고 앉아 있던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그대로 쓰러져 사망한 후 일절 이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정확하게 상황을 진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혼자 있던 아들은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김군은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인범죄가 발생할 동기가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낮고, 특히 운동·감각·지각적인 면에서 민첩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강한 의존성, 융통성 결여, 경직된 사고 등의 특성을 보였다. 결국 건장한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할 동기와 운동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현장감식 결과와 용의자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사는 제3자에 의한 범죄사건으로 가닥을 잡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사망한 피해자 노아무개(52)씨의 신원이 확인되자 수사는 속도를 냈고 사건 발생 추정일 즈음에 피해자와 동행한 것이 목격되었지만 잠적한 용의자 채아무개(38)를 찾아냈다. 밝혀진 사건의 실체는 놀라웠다. 그는 역 주변에서 노숙자들과 술을 마시고 소일하는 자로 피해자 노씨와는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사건 당일 우연히 길에서 만난 피해자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을 것이 있다고 하면서 같이 가서 이야기해주면 담뱃값이나 술을 사주겠다고 하여 범죄현장인 김씨의 집에 동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혼자 집에 있던 김군은 지적장애로 인해 대화도 잇지 못하자 채씨는 노씨에게 “그만하고 가자”고 했으나 노씨가 오히려 욕을 하며 화를 낸다는 이유로 방바닥에 있던 과도로 앉아 있던 그를 살해하고 도주하였던 것이다. 결국 김군은 아버지에게 받을 돈이 있어서 찾아온 두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중 한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한 현장에서 시신과 함께 4일이나 생활하고 있었다. 사망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김군 역시 가슴 아픈 범죄의 피해자가 아닐 수 없다.

지적장애는 유전적 원인 또는 질병 및 뇌장애 등으로 인하여 청년기 전에 야기된 정신발달 저지 또는 지체 상태를 말한다. 과거 ‘정신박약’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나 2007년 10월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2008년 지적장애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경도(mild)는 아이큐(IQ) 50~70 사이로 간단한 일은 가능하지만 보호가 필요하다. 중등도(moderate)는 아이큐 35~49로 정신연령은 3~7살 정도에 해당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언어는 가능하지만 독립된 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여러 유사한 사건을 겪으면서 지적장애가 있다고 해서 이들이 위험하다거나, 범죄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을 경험하였다. 지적장애아를 상대로 진술을 청취할 경우 무엇보다 따뜻한 이해와 보살핌이 전제되어야 하며 전문가의 개입이 병행되어야 한다.

김군은 지금도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피해자이다. 현장에서 사체와 함께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며칠을 생활한 것을 생각하면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까지 보는 것 같아 더욱 가슴 아픈 사건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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