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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통신원 칼럼] 남미를 움켜쥔 ‘중국’ 백신 / 김순배

등록 2021-04-15 13:38수정 2021-04-16 02:35

ㅣ김순배 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지난 11일, 칠레 일간 <엘 메르쿠리오> 1면에는 비행기에서 화물을 내리는 사진이 실렸다. 코로나19 백신 100만회분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중국’ 백신 시노백이다. 칠레는 4월9일 하루 9171명의 신규 확진자를 기록하며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하루 사망자는 129명에 이르렀다. 4월 선거도 한달 뒤로 미뤄졌다. 그 절박한 순간에 백신이 중국에서 또 도착한 것이다. 10일 기준, 인구 1800만명의 칠레에 1485만회분이 도입됐는데, 약 1300만회분, 약 88%가 중국의 시노백이다.

전염병을 치료하는 데 백신의 국적이 중요한 건 아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중국이 ‘마스크 외교’, ‘백신 외교’를 펴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분석이 새로운 게 아니지만, 커지는 존재감을 피부로 느낀다. 브라질도 12일 기준, 접종자의 83.3%가 시노백을 맞았다. 멕시코도 8일 기준, 400만회분의 시노백 백신을 받아, 화이자 백신(615만회분) 다음으로 많다.

한국에서야 중국 백신의 과학적 근거를 불신하고 도입하지 않지만, 라틴아메리카는 따지며 골라잡을 처지가 아니다. 모더나 백신의 반값 수준으로 싸고 상온유통이 가능해서, 값비싼 초저온 냉동보관 체계를 갖출 형편이 안 되는 나라들에 알맞다. 엔리케 파리스 칠레 보건장관이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건 중국의 시노백 덕분이다. 그가 지난 3월19일 뉴칭바오 주칠레 중국대사와 백신 공급 등에 관한 면담 뒤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던 기자회견을 보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게 느껴졌다. 백신 수출을 통제하는 미국과 유럽의 이기주의적 태도에 비하면, 중국은 이제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라는 비난 대신 구세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이미 중국과 라틴아메리카는 상품 시장과 원료의 공급처로서, 밀접한 상호의존적 관계다.

지난달 뉴 대사의 인터뷰에서 언론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물었고, 대사는 투자를 통한 칠레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중국과 칠레의 관계는 지금 최고 수준이다. … 중국 백신이 최대한 빨리 칠레인들이 전염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얼마 뒤, 의회 외교위원회에서 홍콩 인권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나라마다 현실이 다르다. … 어떤 나라도 인권의 정의에 독점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받친 대사의 의례적 인터뷰 사진도, 의회에서 인권에 대한 그의 반박도 왠지 더 당당해 보였다.

중국 백신 외교의 한계도 분명하다. 2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화이자 백신에 대한 신뢰도는 칠레인 사이에 54% 수준이지만, 시노백 백신은 35%에 그쳤다. 이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도 시노백 백신을 2월에 공개 접종받은 뒤 “안전하고 효과가 좋다”고 강조했다. 보건장관과 중국대사의 면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중국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드러낸다. ‘백신에 칩을 넣었다’거나, ‘바이러스를 퍼트리더니, 백신까지 판다’는 식의 비판적 댓글이 여럿이었다. 12일 현재 1천만회분 넘는 시노백 백신이 접종됐지만 아직 확진자가 크게 줄지 않는 가운데, 11일 한 티브이의 저녁 9시 첫 뉴스는 “시노백은 효력이 있는가” 논란을 다뤘다. 지금 칠레 정부는 시노백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한 연구를 서두르고 있다.

며칠 전 친구는 백신을 맞았다면서 “내게 중국 백신을 놨어. 효과가 기껏 50%밖에 안 된다는데…”라고 투덜댔다. 그 반응은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백신 외교로 다시 한걸음 ‘대국’을 향하는 중국이 넘어야 할 만리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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