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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아직도 모른다

등록 2021-04-01 18:27수정 2021-04-02 02:05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불신의 대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조롱의 대상이다. 사회적 신뢰를 이렇게 짓밟아놓고, 지지율이 폭락하니 이제 와 부동산 적폐 청산에 전력을 다하겠단다. 마치 자기들이 남을 단죄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박권일ㅣ사회비평가

기자 시절 ‘헨리 조지’라는 이름을 참여정부 관계자에게 처음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보라며, 그는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였다. ‘너무 오버 아닌가’ 싶었지만 응원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딴건 몰라도 부동산은, 하고 기대하게 된 계기였다.

정말로 기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론조사를 하면 많은 시민들이 정부 개혁에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당시 조·중·동은 종합부동산세를 두고 연일 “세금폭탄”론으로 지면을 ‘폭격’하고 있었다. 국민적 조세저항이라도 일어난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사실 종부세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2004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종부세에 찬성한 비율은 무려 86.9%였다. 2005년 8월 부동산 정책 관련 국민여론조사(TNS)에서 ‘부동산에 거품이 있다’에 90.5%가 동의했고, ‘1가구 1주택이어도 고가주택이면 예외 없이 종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55.1%로, ‘장기보유자 등에 예외가 필요하다’는 의견(27.6%)의 두 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정부의 정책들이 힘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에 벌어진 사태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부동산 시장은 정부를 비웃듯 반대로 움직였다. 지켜보면서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부동산 거품 잡는 게 국민들 염원인데 아무리 투기세력이 반발한다지만 이 정도로 ‘약발’이 안 들을 수가 있나? 답답한 의문이 한동안 사라지지 않다가, 훗날 5년간의 정책을 시간순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다 깨닫게 됐다. 다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정책의 비일관성이었다. 2003년 10·29 대책이 발표되고 집값 상승세가 살짝 약해지자마자(떨어진 게 아니었다), “부동산 규제 완화” “경기 활성화” 주장이 여당에서 쏟아져 나왔다. 조변석개로 뒤집히는 정부여당의 기조는 5년짜리 정권에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을 뭉텅뭉텅 허물었다. ‘신뢰’라는 자산 말이다. 신뢰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는 집값 폭등으로 되돌아왔다. 정부여당이 언제든 개혁을 틀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게 됐다. 한국은 가뜩이나 공공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에 가장 낮은 나라다.(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재난과 공공성의 사회학>) 정부 말만 믿다 손해 본 사람들의 분노는 망설이던 사람들의 공포에 불을 댕겼다. 소위 ‘패닉 바잉’이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잔혹극을 보자. 토지공개념, 헨리 조지, 우호적 여론, 세금폭탄 논란, 신도시 발표, 여당의 부동산 규제 완화 주장…. 실패 과정이 참여정부와 거의 비슷하다. 정책 지휘자가 김수현씨라는 점까지 같다. 그런데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더 나쁜 형태로 같은 실패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의 열화 복제판이다.

이번에도 여론의 다수는 보유세 강화에 찬성이었다. 시민들은 정부여당이 부동산 광풍을 잡아주길 바랐다. 그런데 20대 국회 때 더불어민주당은 어땠나? 종부세법 개정에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임기 만료로 법안은 폐기됐다. 21대 총선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공약으로 ‘1주택자 종부세 감면’을 내걸어 종부세 강화는커녕 무력화에 앞장섰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1가구 1주택 원칙이 나오자 다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사퇴를 택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세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한 임대차법 시행 직전 본인 주택 전세보증금을 14% 인상했고, 이 사실이 밝혀진 다음날 청와대를 떠났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 국회의원도 자신이 대표발의한 임대차법안이 적용되기 전에 본인 주택 임대료를 9% 올렸다. 시세보다 싸니 문제없다는 변명도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시세가 아니라 시점이고, 시점이야말로 저들 행태의 본질이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불신의 대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조롱의 대상이다. 사회적 신뢰를 이렇게 짓밟아놓고, 지지율이 폭락하니 이제 와 부동산 적폐 청산에 전력을 다하겠단다. 마치 자기들이 남을 단죄할 자격이 있다는 듯이. 그렇다. 저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이미 자신이 적폐의 일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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