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문화비평가
깊은 밤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아마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문을 여니 중년의 남자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체부입니다.” 왜 사복을 입고 있는 걸까?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죄지은 사람처럼 말한다. “혹시 문 앞에 잘못 온 소포가 없었습니까? 제가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약간의 시차를 두고 그의 난처함을 이해했다. 아마도 소포를 잘못 배달해서 항의를 받았고, 근무가 끝난 뒤에 찾으러 다니고 있나 보다.
나는 며칠 동안 배달 온 물건 자체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곤 문을 닫을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혹시 소포가 어떤 건지 물었다. 크기나 형체를 알면 우편함 같은 데서 봤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국제우편인데 목걸이라고 하네요.” 값이 꽤 나가거나 중요한 선물이겠구나. “이 건물에 배송 사고가 잦아요. 왜냐면요.” 내가 재빨리 그 이유를 덧붙이려 했지만, 우체부는 체념의 눈동자를 하고 뒷걸음질 쳤다. “네, 그런데 정말로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의심받아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우체부에게 이 건물의 상황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여기로 이사 온 초기에 배송 사고가 잦았다. 분명히 배송완료라고 뜨는데 문 앞에 없어 택배원에게 연락하고서야 뒤늦게 받은 일이 여러번 있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하루이틀 늦어져도 오기만 하면 불만은 사라진다. 그런데 내가 한시라도 빨리 받아야 할 물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수면 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이사 온 집이 심하게 흔들려 더욱 괴로웠다. 어떤 밤에는 침대가 구식 열차처럼 우르르르 진동을 해서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현관문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장치 때문일까? 옆의 식당에 있는 대형 냉장고들이 만들어내는 진동일까? 아파트 공사장에서 밤새 모터를 돌려 저주파 소음이 전해오는 걸까? 사방을 뛰어다녀도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침대 아래 공업용 완충재를 깔아보자며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했다.
나는 잠을 주문했는데 배달받지 못한 사람처럼, 밤새 뜬눈으로 택배를 추적했다.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그럴수록 더 안 온다. 말로만 듣던 택배의 버뮤다 삼각지대는 실존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배달완료가 떴고, 나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허겁지겁 택배원이 보내준 사진을 확인했다. 분명 우리 집 현관 앞이었다.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거지? 이제 이웃에 대한 의심이 내 불면의 또다른 이유가 되었다. 그러다 집들이에 오던 친구의 화난 전화 목소리에 그간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바로 길 건너에 같은 건축업자가 지은 똑같은 이름의 빌라가 있었던 것이다. 현관문과 바닥재 등 건축자재도 우리 집과 똑같아 배달 사진으로도 구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문제의 택배는 결국 찾지 못했지만, 나는 간신히 집에 적응해 자정이면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배달원들도 이 집의 이름을 알고 99%의 확률로 제때 물건을 가져다준다. 0.9%는 조금 늦을 뿐이고, 0.1%는 아주 늦지만 결국엔 찾아온다. 오늘도 누군가의 꿀잠, 누군가의 한끼, 누군가의 직업이 담긴 상자들이 배달 트럭에 실려 밤과 낮을 달린다. 어떻게 보면 그 모든 물건들이 이렇게 높은 확률로 제때에 주인을 찾아가게 만드는 시스템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거기에 감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물건이 조금 늦더라도 재촉하지 않기. 배달원들이 편안히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기. 내 집 앞에 잘못 온 상자 건드리지 않기. 그리하여 배달원들이 죄지은 얼굴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일이 없게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