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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신장·홍콩 인권은 한반도 평화와 양립할 수 없나/박민희

등록 2021-03-23 16:10수정 2021-03-24 02:44

1901년 의화단 사건 때 베이징을 점령한 8개국 연합국과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맺는 장면(위)과 2021년 알래스카 미-중 회담에서 중국이 “당신들은 중국의 면전에서 잔소리할 자격이 없다”며 미국을 훈계하는 장면을 19일 <인민일보>가 위아래로 편집해 ‘두개의 신축년의 대비’라는 제목으로 에스엔에스인 웨이보에 올렸다. 웨이보 갈무리
1901년 의화단 사건 때 베이징을 점령한 8개국 연합국과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맺는 장면(위)과 2021년 알래스카 미-중 회담에서 중국이 “당신들은 중국의 면전에서 잔소리할 자격이 없다”며 미국을 훈계하는 장면을 19일 <인민일보>가 위아래로 편집해 ‘두개의 신축년의 대비’라는 제목으로 에스엔에스인 웨이보에 올렸다. 웨이보 갈무리

박민희
논설위원

“중국과 국제공동체가 따르는 것은 국제법으로 뒷받침되는 유엔 중심의 국제체제와 질서이지, (미국 등) 소수 국가들이 지지하는 소위 ‘규범에 근거한 국제질서’가 아니다.”

지난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16분 연설은 ‘중국식 국제질서 선언’이라 할 만했다. 중국 당국의 신장위구르·홍콩 인권 탄압 등을 비판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맞서, “중국식 민주”가 새로운 표준이라고 훈계한 양제츠 정치국원은 중국에서 ‘민족의 영웅’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중국 위협론’을 더 고조시켰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의 핵심인 ‘동맹과 함께하는 중국 견제’에서 인권과 민주는 동맹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깃발이다. 신장의 강제 ‘재교육 캠프’와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은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에서는 정당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주제가 미-중 관계의 주요 이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2일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는 공동으로 신장 인권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지난 18일 서울에서 열린 ‘바이든 시대’의 첫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의 초점은 다른 곳에 맞춰져 있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핵심에 둔 아시아 외교의 새 판을 만들려 했고, 한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에 초점을 뒀다.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것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이날 저녁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중국 전문가들은 미-중 외교 담판을 앞두고 미국이 반중 동맹을 규합한다며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한국이 응하지 않아 헛수고가 됐다며, 한국을 미국 견제에 한껏 이용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경기 회복과 남북관계 복원에 중국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서 “약한 고리”라고 보도했다. 한국이 모호성을 유지해도, ‘중립’은 아닌 것이다. 알래스카 회담에서도 미-중은 한국의 입장을 서로 ‘우리 편’으로 해석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모호한’ 한국을 각자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력이 더 커질 우려가 있다.

“한국이 미-중 간 하나를 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말에 동의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미-중이 치열한 패권 경쟁의 길에 들어선 현실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만,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최대한 확보해 주요 사안이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결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원칙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중국은 한국의 ‘침묵’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시하게 되고, 한-미 관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발언권은 줄어들게 된다.

미국이 아닌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로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를 회피하면 반중-친중 진영 사이의 갈등만 깊어지고, 외교안보에 대한 초당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중국의 인권 문제나 강압적 외교를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다자적 움직임에 한국도 참여할 수 있다. 중국과의 외교회담에서 “신장, 홍콩은 중국의 내정”이라며 인권 침해에 동조하는 발언도 삼가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이 한국에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전략미사일 등을 배치해 긴장을 고조시키려 한다면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협의체인 ‘쿼드’가 중국을 견제하는 군사동맹이 된다면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쿼드가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 첨단기술, 무역, 백신 등의 이슈를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비군사적 분야의 선택적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미-중 경쟁의 최전선이 된 반도체 산업의 재편 등에서 한국이 밀려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중 충돌 속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협상 재개의 조건을 만들어가려는 신중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긴밀히 얽힌 미-중의 ‘신냉전’은 미-소 냉전과 달리, 한쪽에선 갈등하고 다른 쪽에선 협력하는 투트랙일 것이다. 알래스카 회의에서 정면충돌하는 모습을 보인 미-중 외교관들도 북한 핵문제는 협력 가능한 분야로 꼽았다. 한국은 그 공간을 넓히기 위한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 원칙과 역할이 없으면 발언권도 없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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