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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정인 칼럼] ‘핵 공유’는 없다

등록 2021-03-21 16:20수정 2021-03-22 02:40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미연합 재래식 억제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교협상을 통해 비핵화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우리의 불신이 커질수록 대북 핵억제력은 감소한다는 역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정인 ㅣ세종연구소 이사장

2017년 9월 6차 핵실험과 11월 화성-15형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발사 이후 북한은 한동안 핵무기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꼈다. 그러나 올해 1월8일 노동당 8차 대회를 계기로 ‘국가 핵무력 건설 대업 완성’을 강조하며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그리고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 무기들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핵 선제타격론 표현도 곳곳에 등장했다.

북한의 핵 교리가 중국식 ‘최소억제’(minimal nuclear deterrence)를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이는 적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전술핵은 실전에서의 사용을, 특히 재래식 교전 상황에서의 핵 선제사용을 전제로 한다. 억제를 위한 보복위협용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의 전술핵 발언을 ‘게임 체인저’로 판단하고 독자 핵무기 개발부터 미국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를 통한 공포의 균형 구축 등 다양한 대안을 거론하고 있다. “나토식 핵공유 정책이 도입되면 북핵은 제어되고 우리는 북핵의 노예로부터 해방된다”는 홍준표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술핵 행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핵기술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이 2013년 2월 3차 핵실험에서 고농축우라늄탄을 실험함으로써 전술핵 보유의 문턱을 넘어섰고, 2016년 9월 5차 핵실험을 계기로 탄두의 소형화가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5차 핵실험 6개월 전 김정은은 핵무기병기화 사업 지도를 통해 “정밀화 소형화된 핵무기들과 그 운반수단의 개발”을 지시하고 “핵 선제타격권은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 당대회에서의 발언은 이러한 그간의 흐름을 공식화하는 수순에 가깝다.

더욱 중요한 포인트는 미국이 북의 행보에 대응하는 핵억제력을 꾸준히 향상해왔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군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이나 대륙간탄도탄은 20~25분이면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여기에 2018년 핵태세보고서를 통해 도입이 공식화된 벙커버스터 중력탄(B61-12), 트라이던트2 에스엘비엠, 토마호크 핵 순항미사일 등 저위력 핵무기로 북한의 전술핵 사용 시나리오에 대응하고 있다. 북이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보복타격을 피할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설령 평양이 전술핵탄두를 실전배치한다 해도 한계는 여전하다. KN-23(이스칸데르) 같은 단거리미사일이나 방사포 체계는 한미연합 전력의 우선 선제타격 대상이다. 한국 공군의 막강한 제공권으로 인해 전투기에 의한 중력탄 투하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그나마 핵지뢰 정도만이 유용하나 방어적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는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오히려 북한 쪽에 최우선 표적을 제공해, 핵억제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유리병 속 전갈들’(bottled scorpions)과 같은 핵확전 위험성만 증폭시킬 뿐이다.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거론하는 나토식 핵공유도 실상은 다르다. 냉전 기간 미국과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핵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협의를 통해 공동 핵 계획을 수립·이행해 왔다. 미군 전술핵무기가 배치된 5개국은 자국 전투기를 이용해 미군 쪽 중력탄을 투하하는 역할 분담도 맡아왔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핵은 ‘공유되지 않는다’. 핵무기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오로지 미국 대통령만이 갖고 있고, 워싱턴에서 직접 암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유럽의 전술핵무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더욱이 나토식의 핵 정책 조율을 위해서는 1958년 맥마흔 원자력에너지법에 의거해 미 상원이 ‘핵 협력 프로그램’(program of cooperation)을 비준해야 한다. 그러나 상원이 한국을 대상으로 이를 비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노틸러스 연구소의 피터 헤이스 박사에 따르면, 독일 등 미군 전술핵이 배치된 일부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택하고 있는 확장억제 교리의 공유와 선언에 기초해 미 본토나 역외 전략핵으로 핵억제력을 구축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따라서 북한의 전술핵 행보에 미군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공유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미연합 재래식 억제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교협상을 통해 비핵화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이다.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우리의 불신이 커질수록 대북 핵억제력은 감소한다는 역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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