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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대면 너머에서 말 건네기 / 권영란

등록 2021-03-21 15:39수정 2021-03-22 12:36

권영란|진주 <지역쓰담> 대표

안녕, 봄꽃이 서둘러 폈다. 남쪽이라지만 우수 지나 매화, 산수유 앞다퉈 피고 지더니 간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파트 마당을 나서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아직 춘분 전인데 목련은 흰 꽃등을 총총 달고, 벚꽃 망울은 화들짝 일제히 폈다. 꽃들이 자꾸 말을 걸어 이른 봄이 왔다.

사방은 꽃 천지에 눈이 시릴 정도로 찬란한데 지금 경남 진주는 어느 때보다 불안한 봄이다. 지난 9일 발생한 ‘사우나발 집단확산’으로 이제야 코로나19 팬데믹 상태를 절감하는 듯하다. 시쳇말로 역대급의 확진자 발생에 하루에도 수시로 울리는 확진자 재난 알림 소리. 지역사회는 순식간에 위축됐고 예민해졌다. 갈등과 혼란은 가중됐다.

지난 1년 새 지역에서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새로운 질서 기준이 됐고 대면 관계로 이어지던 지역공동체 문화는 유지가 힘들어졌다. 도서관도 전시관도 공연장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팬데믹 시대에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각계 전문가 의견이 쏟아지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불확실성과 단절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내가 활동하는 ‘지역쓰담’은 지역사회에 갓 뿌리내린 작은 비영리 문화단체다. 상근자 한명 없이 전부 자원활동가들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는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온라인을 병행해 활동했지만, 여전히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며 빠르게 전환했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집합 규제가 엄격했던 지난 1월과 2월, 지역에서 비대면 기획강좌 ‘백석의 시를 읽는 겨울밤’, ‘날라리 아카데미’를 진행한 사례다. ‘날라리 아카데미’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대면 너머 지역 너머’였다.

… 팬데믹 시대, 지역에서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날라리 아카데미’는 글쓰기, 인문여행, 철학, 경제, 미술,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고수들을 강사로 모셨습니다. 진주와 사천, 산청 인근 지역은 물론 멀리 서울, 부산 등 온라인 줌이 가능한 곳이면 참여 가능합니다. 지역 간의 경계 그 너머, 대면 관계 그 너머에서 문을 두드리고 말을 건넵니다. 너머에서 새로운 문화를 짓습니다. 덧붙여 이번 기획은 어떤 지원금도 받지 않은 지역쓰담의 자립·자발적인 기획임을 밝힙니다. …

기획 의도는 이랬다. 진주, 사천 지역 6개 시민단체가 함께했고, 매회 참가자는 모집 정원을 넘어 30명을 웃돌았다. 전 강좌 유료 참가였는데 진주를 비롯해 창원, 사천, 남해, 산청, 청주, 보성 등 8개 지역에서 신청했다. 청년이나 비영리활동가들은 참가비를 받지 않았다. 개별 강좌 신청 문의는 수시로 들어왔다. 2개월 동안 매주 진행됐는데, 처음에 느끼던 비대면 강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참가자들은 놀랄 정도로 진지했고 탐구적이었다. 이건 뭘까, 예상보다 더한 반응에 되레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1월과 2월은 문화 비수기다. 문화예술단체가 대부분 휴식하거나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는 시기다. 거기다 팬데믹 1년을 지나며 아예 문을 닫아걸고 있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오히려 문화예술에 더 갈증을 느꼈다. 위로받고 싶어 했다. 안부를 묻고 관심사를 같이 나누고 싶어 했다. 서로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4월에는 비대면 대중강좌 ‘김수영의 시를 읽는 봄밤’을 3회 진행한다. ‘백석의 시를 읽는 겨울밤’에 이어 두번째다. 팬데믹 1년을 지나며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웃한 지역과 지역을 잇는 작은 움직임이다. 대면 너머에서 일상을 찾고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다. 자꾸 뭔가를 하려 한다.

꽃들이 서둘러 말을 걸어 봄이 왔듯이 쿵쿵쿵, 문을 두드리고 자꾸 말을 건네고 미소를 보낸다. 반가워요, 잘 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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