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3월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2016년 3월9일 시작한 알파고-이세돌 대국과 2011년 3월11일에 시작된 동일본 재난(지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5년 전인 2016년 3월11일은 동일본 재난 5주기가 되는 날이자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두 차례 이긴 다음 하루 쉬는 날이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대표가 이날 오후 카이스트에 와서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강연했다. 강연장이 꽉 차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로비에 서서 소리만 들을 정도였다. 모두의 눈과 귀가 허사비스와 알파고로 향해 있는 동안 시계가 오후 2시46분을 알렸다. 바로 그때 일본에서는 추모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2011년 그날 일본에서 지진이 시작된 시각이었다. 5년 전 재난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호기심 사이에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2016년의 관점에서 알파고와 후쿠시마는 여러모로 대비가 되는 사건이었다. 알파고는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미래를 가리키고 있었고, 후쿠시마는 일본과 세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 같았다. 알파고는 모든 것이 매끈하게 연결되어 척척 돌아가는 시스템을 약속했고 후쿠시마는 그런 시스템은 없다고 가르쳐주었다. 알파고는 혁명을 약속했고 후쿠시마는 파국을 예고했다. 한마디로 알파고는 놀라운 성공이었고 후쿠시마는 참담한 실패였다. 알파고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과 후쿠시마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이후 5년이 흐르는 동안 혁명의 완수는 유예되었고, 재난의 기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연된 혁명과 잊힌 재난 사이에서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다.
코로나19 사태를 1년 넘게 겪고 있는 2021년의 관점에서 알파고와 후쿠시마의 세계관은 여전히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 없이도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알파고의 세계관은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와 비대면 체제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알파고가 약속했던 자동화, 무인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회라고도 했다. 하지만 비대면은 테크놀로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일부에게만 안전한 피난처였고 그 일부의 안전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과 접촉하며 일하는 많은 사람 덕분에 가능했다. 일본 동부를 덮친 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 현장에서 구조하고 치료하고 복구하는 일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처럼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고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부족하다.
알파고 5년과 후쿠시마 10년을 함께 떠올리며 우리는 테크놀로지와 재난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테크놀로지의 성공을 상당히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반면 그 실패는 꽤 빨리 잊는다. 성공은 한번만 일어나도 곧 무한 반복될 것처럼 느끼고, 실패는 아무리 커도 앞으로 반복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알파고를 계속 소환하여 미래에 대한 기대를 연장하면서 후쿠시마는 과거에 조용히 남아 있기를 원한다. 둘째, 테크놀로지의 혜택도 재난의 고통도 절대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은 과학과 의학 연구에 기여하고 생산과 소비를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택배와 물류 분야에서 보듯이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조건을 구축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 시스템의 편향과 배제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는 재난의 피해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입었다.
알파고와 달리 후쿠시마는 한국 사회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그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더 희미해질 것이다. 후쿠시마든 코로나19든 우리는 어서 재난을 벗어나 알파고의 혁명을 기다리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더 현실적인 미래는 기술과 산업의 혁명으로 재난이 빠르게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길고 느리고 넓은 재난들이 중첩되어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상태다. 이제 재난의 종식을 바랄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알파고와 후쿠시마, 거기에 코로나19까지 일련의 사건을 나란히 놓고 두텁게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다음 재난을 감당할 힘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