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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울 말고] 능력주의에 묻는다 / 명인

등록 2021-03-14 17:23수정 2021-03-15 02:39

명인(命人) ㅣ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시골에 와 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우는 것투성이다. 봄이 되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산, 들, 바다에 먹을 것이 널렸는데, 나는 여전히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며칠 전 봉래산에 갔을 때 이름을 배운 나무라는데, 팔영산에서 보니 내 눈엔 전혀 다른 나무다. 3월에 뜯었던 나물도 4월에 가면 못 알아보고 꽃이 피었을 땐 알던 나무도 꽃이 지면 첨 보는 나무다. 심지어 같은 시기 같은 산에서도 고도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니 어찌 알아본단 말인가? 한번은 밭에서 냉이를 알아보곤 신이 나서 말했다. “10월인데 냉이가 있네요. 당연히 못 먹는 거죠?” 웬걸, 냉이는 봄의 전령사인 줄만 알았는데 가을 냉이는 보약으로 친단다. 이웃이 나눠주는 걸 받고도 난감했던 적이 많다. 요리해본 적은커녕 먹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게 태반이다. ‘몰’이라면서 주길래 검색 신공을 발휘하니 표준어로는 ‘모자반’이라 하고 해조류라 한다. 데쳐서 무쳐도 먹고, 국을 끓이기도 한다는데 어떤 맛인지도 모르고 어찌 요리를 한단 말인가? 김은 ‘그냥 김’과 ‘조미김’만 있는 줄 알았지, 물김이라니, 이건 또 뭐지? 서대면 그냥 서대지, 서대는 뭐고 박대는 뭐고 용서대는 또 뭐냐고요.

올해로 시골살이 10년차인데도 나는 시시때때로 이런 무능감을 마주한다. 특히 귀농귀촌인 건 같아도 시골 출신이어서 나와 달리 안 배워도 알거나 배움이 빠른 사람이 있으면 열등감마저 든다. ‘나도 도시에 살 땐 나름 능력 있단 소리도 들었고, 그런 거 몰라도 그만인데 왜 이러고 살까?’ 투덜거리다가 생각났다. 결혼 초반이었다. 결혼 전에 별로 안 해보긴 나나 옆지기나 마찬가지였는데 옆지기는 나에 비해 살림에 너무 무능했다. 나에겐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야 하는 일인데 옆지기는 못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바로 그 이유로 살림에서 한 발을 빼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무능한 게 자랑이고 벼슬이야?” 옆지기는 그 말에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회사에서 같은 말을 들었다면 몹시 자괴감을 느꼈을 텐데, 집안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못하는 것을 ‘무능’이라 여겨본 적이 없다는 게 되게 놀랍다면서. 그때부터 옆지기는 살림을 ‘당연히’ 같이 하면서 배우려고 애쓰는 사람이 됐다. 농사를 짓거나 바다 일을 하거나 직접 무언가를 생산하는 삶은 아무리 가난해도 나눌 것이 있다. 그래서인지 시골 사람들은 툭하면 뭘 나눠준다. 낯선 시골에 처음 와서 살기 시작한 사람에게 그런 나눔은 결국, 돌봄이었다. 살 집을 같이 찾아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나는 다시, 무능감과 열등감을 추스르고 갓 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가처럼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자연, 돌봄과 나눔의 관계, 이 경이로운 세계에 발을 딛기로 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보상과 인정 시스템을 말한다. 신분이나 재산, 운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과 ‘노오력’을 권하는 사회를 낳았다. 그러한 능력주의가 실은 어떤 허상이며 어떻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심화하는지를 지적해온 분들도 많다. 나는 그러한 능력주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묻고 싶다.

능력으로 줄 세우는 사회, 자본주의가 훈육한 바로 그 ‘전문성과 능력’이 이 사회를 기후위기와 팬데믹에 빠뜨린 건 아닌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재난과 위기의 시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연과 더불어 생존하는 능력, 관계를 되찾고 서로를 돌보는 능력이 아닐까? 대체 이런 건 왜 능력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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