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팩스턴, <하녀>, 1910, oil on canvas, 76.8×63.8㎝,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미국 출신의 윌리엄 팩스턴(1869~1941)이 그린 <하녀>는 겨드랑이에 먼지떨이를 낀 채 책 읽기에 흠뻑 빠진 청소부를 보여준다. 방 청소를 하던 하녀가 틈틈이 주인마님이 읽는 소설을 아슬아슬하게 몰래 꺼내 읽는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하녀는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봐 청소하던 자세 그대로 서서 긴장하며 책에 집중하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근무시간에 사무실 책상에서 살짝 눈치를 보며 웹 연재소설을 켜놓고 읽는 분위기라고 할까.
햇빛 드는 창가 옆 안락의자에 앉아 맘껏 책을 즐길 수 있는 유한계급 여인들과 달리, 팩스턴이 그린 여인은 마저 청소를 마무리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고, 마님의 물건에 손을 대서도 안 된다. 하녀에게 독서는 본분에 맞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책 읽는 귀부인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보다 이 그림이 유독 호기심을 자극한다.
상류층에게 그들만의 매너가 있다면, 하인들에게도 나름 생활지침이 있었다. <걸리버 여행기>로 잘 알려진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을 펴냈다. 스위프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20대 후반부터 먼 친척인 윌리엄 템플 경의 저택에서 기식하며 글을 썼는데, 그동안 그 집 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본의 아니게 샅샅이 관찰할 수 있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하인들이 얼마나 대충 일하고, 귀한 음식을 몰래 집어 먹고 주인 돈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기 잘못을 남에게 넘겨씌우는가 하면, 입만 열었다 하면 핑계를 둘러대던지! 그런데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은 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보고서는 결코 아니다.
스위프트는 주인집 살림을 알뜰하고 체계적으로 잘 운영하는 하인의 지침을 쓴 것이 아니라, 믿음직하고 썩 괜찮은 하인으로 주인에게 인정받으면서 오래도록 한집에서 일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세심하게 썼다. 하인의 존재 이유는 모든 자리에서 주인의 체면을 지켜주고 근사하게 보이도록 높여주는 데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 외의 일들은 적당히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하면서 틈틈이 자기 몫도 슬쩍 챙겨두라고 적극 부추긴다. 훔친 빵이 더 맛있다고 느껴야 하인 체질이지, 죄책감을 가지면 오래 못 버틴단다.
주인의 가정사에 개입하며 괜스레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 하인들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요령껏 마무리 지으면 되지, 불필요하게 과도한 책임감으로 주인집을 바로 세우려 들거나 다른 하인들의 영역까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인의 역할은 집주인을 편하고 기쁘게 해주는 선까지이며, 자신의 위치를 혼동한 채 지나치게 똑똑한 척하며 주인을 가르치려 드는 하인은 결국 그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주인이 아무리 친구처럼 자신을 신뢰한다 해도, 주인을 자기와 비슷한 급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수십년간 하인들의 생활을 메모하다 보니, 스위프트가 깨달은 결론은 우직하게 성실하고 도덕적인 심복의 충성이 아니라, 적당히 얄팍하게 굴며 자기 것 잘 챙기는 하인의 행동이 오히려 주인을 만족스럽게 해준다는 것이다.
오늘날엔 신분사회가 종식하여 더 이상 하인으로 사는 이가 없고, 민주주의가 이 사회에 뿌리내려 시민 모두가 주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18세기 하인의 마음자세와 행동거지에 대해 쓴 스위프트의 책이 요즘과 완전히 관계없는 그저 과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이주은ㅣ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