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나 ㅣ 페미니스트문화기획자그룹 보슈(BOSHU) 공동대표
얼마 전 대전에서 1인가구 정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재작년부터 대전시의 공동체, 복지, 여성, 청년 부서 공무원을 한바탕 돌며 이삼십대 여성의 요구가 반영될 틈이 없는지 알아본 뒤였으므로 마음 같아선 정책 입안까지 하고 싶었으나 토론은 두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삼십대 여성이 놓인 특수성을 설명하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문을 여는 시의장의 인사말이 독특했다. 그는 주변에 이혼과 사별로 혼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며 1인가구 의제와 자신이 멀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1인가구 중에는 의식주가 수월하게 해결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기업의 마케팅 대상이 되어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살아간다”며 이 자리에서는 그렇지 않은 어려운 분들을 생각하자고 말하고는 단상에서 사라졌다.
그 말을 뜯어보고 있는데 첫번째 토론자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그는 국민임대아파트 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주민의 생활을 돕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남성 주민들이 알코올중독인 경우가 많고 스몰토크(일상적 대화)를 하기 어려워해 이웃과 단절되어 살아가며 식사 해결의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빈대떡을 부쳐서 옆집 할머니와 나눠 먹는 엄마를 떠올렸다. 또 그들은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토론자는 이들이 센터에서 마련한 요리교실에 나오면서 어떻게 자신감을 얻고 밝아지는지 이야기하며 뿌듯해했다. 요양보호사에 몰리는 여성 노인들과 24시 식당에서 근무하는 중년여성들을 떠올렸다. 여성 빈곤은 사회적 문제이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남성이 겪는 외로움이 대신한다. 섹스와 결혼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듯 우정과 사랑도 개인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성찰해야 할 주제라는 건 왜 모를까.
절망하며 발언 내용을 수정했다. 행정이 저출생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삼십대 여성은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는 시민이라고 말했다. 다른 토론자는 젊은 여성에 편견이 있는지 그들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집안일을 못 하고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는데, 나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회비를 내며 활동하는 비혼여성커뮤니티 비혼후갬을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은 영어, 경제 공부 등 다양한 모임을 하고 있고 1인가구를 위한 요리교실 수강을 희망한다.
코로나 이후 이삼십대 여성 자살률이 급등했다. 이들의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위치가 재난 상황을 만나 참혹하게 드러난 것이다. 아무도 이들을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정책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을 때, 이들은 자구책을 찾고 서로 만나고 공부하며 돈을 모은다. 자존과 공생을 위해서다. 이 자리에선 이것 하나 건지자는 마음으로 가구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과 임대주택 지원 시 가족 중심으로 특혜 주는 것을 지적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바꿀 것도 할 일도 많다.
대전시는 청년인구 감소를 걱정한다. 이들이 어떤 삶을 기획하는지 모른 채. 대전에는 뭔가 해보려는 여성들이 있다. 전국에는 기회만 닿는다면 대전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대전시가 나서서 1인가구 타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살고 평생 배우며 서로 어울리는 마을. 실현 가능하다. 이미 그들이 비혼후갬이라는 커뮤니티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하는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지역의 정책은 지역 안에서 어떤 활동이 벌어지고 움직임이 있는지 살피면서 함께 가는 방향으로 펼쳐질 때 의미가 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편견에 입각해서는 결혼친화도시 같은 기괴한 정책만이 떠오를 것이며 그곳에는 외롭고 공격적인 이들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