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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심채경의 랑데부] 화성 착륙 생중계가 지루했을 소녀

등록 2021-02-25 14:37수정 2021-02-26 02:41

24일(현지시각)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퍼시비런스 로버가 화성의 제제로 크레이터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24일(현지시각)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퍼시비런스 로버가 화성의 제제로 크레이터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심채경 │ 천문학자

보위의 화성은 한 생명이 삶을 이어가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사회다. 누군가에게는 이 지구가 척박하고 메마르고 숨도 쉬기 어려운 화성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노래 속 소녀에게 화성 로버의 착륙 생중계 방송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지독하게 지루할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 로버 퍼시비런스가 반년 이상 우주를 항해한 끝에 우리 시간으로 지난 19일 새벽, 화성 표면에 무사히 착륙했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신호를 보내는 데 11분, 답이 돌아오는 데에 다시 11분이 걸린다. 화성 대기에 진입해 표면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7분에 지나지 않으므로,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로버의 착륙 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다. 신호가 도달하기도 전에 추락해버릴 테니 말이다. 이전의 화성탐사 로버 큐리오시티를 꼭 닮은 퍼시비런스는 착륙 과정도 큐리오시티가 그랬듯이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낙하산이 펴지고, 방열판이 분리되고, 스카이크레인이 줄에 달린 로버를 서서히 내려보내고, 착륙하기까지. 관제소의 누군가가 퍼시비런스에서 오는 신호를 읽어줄 때마다 파란 웃옷을 입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환호했다. 벽에는 미국의 국기와 유관기관의 로고들이 붙어 있었는데, 마침내 착륙에 성공했음을 확인하자 그 옆으로 ‘착륙했다’는 내용의 문구가 마트 주차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명 광고처럼 빛으로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착륙 과정에서 일어난 먼지가 카메라 전면에 잔뜩 묻은 채로, 착륙지 풍경을 찍은 첫 사진이 지구로 도착했다. 그러고 나서 퍼시비런스는 잠시 안정을 취하기 위해 휴식에 돌입했다.

퍼시비런스의 착륙 자체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전 인류적 사건인가에 비해, 생중계는 조금 지루했다. 먼지 낀 렌즈로 찍은 흑백 사진 한두장을 보자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단 말인가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관제소 장면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로버의 제작이나 착륙이나 과학 임무에 관여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저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에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의 화성 궤도선 두대가 각각 성공적으로 화성 궤도에 도착했는데 그런 뉴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미국의 더 큰 성과에만 사람들이 집중하는 건 아닌가 하는, 같은 후발주자로서 갖는 지나친 공감과 피해의식이 고개를 살짝 내밀기도 했다.

그런 딴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생방송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흥미로운 부분은 로버의 착륙도 끝나고 관제소 생중계가 마무리된 뒤에 시작되었다. 가수 겸 작곡가 영블러드가 악기 연주자들을 데리고 나와 데이비드 보위의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를 불러주었다. 짧은 공연은 아주 멋졌다. 그 노래를 배경으로 어린이들이 퍼시비런스의 무사 착륙을 기원하며 나사의 에스엔에스(SNS)에 올려준 사진이 여럿 지나갔다. 이 노래가 아이들의 해맑은 사진을 감상하며 들을 만한 노래인가를 잠시 생각했다.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어떤 소녀는 부모에게도 외면당하고 그럴 때 의지할 만한 친구도 없이, 삶이라는 아주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영화와 같은 운명 속에 홀로 남겨진다. 거칠고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이 사회는 너무도 슬프고 지루하다고 노래하며 보위는 묻는다. 화성에 생명이 있을까? 보위의 화성은 한 생명이 삶을 이어가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사회다. 누군가에게는 이 지구가 척박하고 메마르고 숨도 쉬기 어려운 화성과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노래 속 소녀에게 화성 로버의 착륙 생중계 방송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지독하게 지루할 것이다.

퍼시비런스는 화성 표면에서 고대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한때 화성에도 어쩌면 물이 흘렀고, 어쩌면 그 물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가 살았고, 어쩌면 그 생명체의 흔적이 협곡 하구 삼각주에 차곡차곡 쌓인 진흙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그 흔적을 찾아내고자 하는 퍼시비런스 로버에게는 ‘라이프 온 마스?’는 너무 잔인한 제목일지 모른다.

먼저 화성에 갔던 로버들이 그랬듯이 퍼시비런스는 몇년에 걸쳐 제 소임을 해낼 것이다. 로버가 그곳의 돌과 흙을 모아 시료통에 모아두면 몇년 뒤 다른 탐사선이 가서 그 시료를 지구로 가져올 예정이다. 그때쯤에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어 ‘라이프 온 마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뉴스를 장식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때쯤에는 보위의 노래 속 소녀도 로버에 응원 메시지를 보낸 사진 속 아이들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회가 될까? 어쩌면 그건 화성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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