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무부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눈앞의 고양이를 ‘길냥이’로 부르는 이와 ‘도둑고양이’로 부르는 이의 생각은 많이 다를 수 있다. 말에는 느낌과 선호, 관점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검사장급 인사를 다룬 8일치 <한겨레> 보도는 ‘누구의 말’로 전달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성윤 또 유임…‘윤석열 패싱’ 검찰 인사’(1면), ‘‘친정권 검사’ 돌려막기…인사권 쥐고 검찰 통제 강한 의지’(3면), ‘“이성윤 리더십 잃었는데 무리한 인사”’(3면)를 제목으로 한 기사에 독자가 놀란 것 같다. “이게 한겨레 기사 맞느냐”는 항의는 점잖은 편이었다. 며칠 뒤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위원의 기사 검토에서 외부위원들은 “그동안 법조기사의 기조에서 볼 때 완전히 다른 기조로 읽혔다”거나 “독자들이 느꼈을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은 평소 한겨레 논조와 다른 느낌을 주는 말들이 제목으로 강조된 때문이다. ‘패싱’, ‘또 유임’, ‘친정권’ 같은 단어는 ‘조국 사태’ 이후 윤석열 검찰과 정권의 갈등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을 불러일으킨다. ‘또 유임’은 이성윤 서울지검장을 진작 교체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간 한겨레가 이 지검장의 과오를 지적하며 교체를 주장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기에 갑작스러웠다. ‘패싱’은 윤 총장과 법무부 사이에 협의가 안 된 게 법무부만의 책임인 듯한 인상을 준다. 문재인 정권은 수사권은 총장이, 인사권과 감찰권은 장관이 행사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게 검찰개혁이라는 주장을 펴는 상황이다. ‘친정권’은 현재 검찰 내부를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는 윤석열’ 대 ‘정권에 줄서는 검사’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윤 총장의 행보가 검찰권력 수호를 위한 ‘정치행위’란 시각도 엄연하다. 이에 맞선다고 친정권의 낙인을 찍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이런 취지의 말들은 한겨레의 기조에 맞게 다른 표현으로 바꿔 썼다면 느닷없다고 느끼는 독자는 줄었을 것이다.
물론 박 장관의 인사는 비판받아야 한다.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퇴 논란을 통해 좀 더 명확해졌듯이, 인사의 과정과 내용은 이른바 ‘추-윤 갈등’의 연장전 같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모드 전환을 시사한 문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 기조와 어긋나는 것이었다. 또 주요 사정기관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과도 거리가 멀었다. 이날 한겨레 기사는 박 장관 인사의 이런 ‘역진적’ 측면을 나름 포착해내고 있다. 하지만 비판의 논거를, 검찰개혁을 질서있게 해내길 바라는 보통 국민이 아니라, 갈등의 다른 당사자에게서 가져온 것은 적절치 않았다.
이 기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취재보도의 원칙에서 벗어난 내용은 기사의 객관성, 공정성을 훼손했다. ‘친정권 검사 돌려막기’라는 제목은 “일부에서는 (그런) 비판도 제기된다”는 본문에 근거한 것인데, 굳이 부차적인 문구에서 주제목을 뽑을 일은 아니었다. 기사에 인용된 취재원도 검찰 구성원 또는 검찰 출신 인사에 편중돼 있고 대부분 익명이다. “검찰 안팎”, “일부”, “알려졌다”, “씁쓸한 뒷맛” 같은 모호한 표현도 여럿 나온다. 김영욱 책무위원(카이스트 교수)은 “검찰 출신이 아닌 법조인이나 전문가를 취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보도준칙은 “비판적인 내용의 발언은 최대한 실명 취재원을 인용하며, 부득이 익명으로 할 경우 공격받는 쪽의 반론을 충분히 싣는다”고 되어 있다. 취재 현장의 어려움은 예상되나, 조금씩이나마 원칙에 다가서는 노력은 필요하다.
기사는 결국 누군가를 설득하는 글이다. 누가 읽을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며 표현과 전달 방식을 다듬는 일은 중요하다. 이는 언론이 독자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명제와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뉴스를 편향적으로 소비하는 시대, 언론이 기사를 통해 독자와 대화하려는 노력은 더욱 값지다.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