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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정인 칼럼] 바이든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록 2021-02-21 11:07수정 2021-02-22 02:39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시엔엔>(CNN) 방송이 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밀워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시엔엔>(CNN) 방송이 연 타운홀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밀워키/AFP 연합뉴스

북핵 역사 30년의 아쉬운 순간에는 어김없이 정보 실패와 판단 착오가 있었다.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북한 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 북한의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자의적 평가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체제 안보를 위해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문정인 ㅣ 세종연구소 이사장

아직 검토가 끝난 것 같지는 않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서서히 윤곽을 잡아가는 듯하다. 2월12일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 핵 문제는 시급한 우선순위 사안이며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바이든 행정부 들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그동안의 염려를 덜어주는 발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북한 핵 능력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추가 대북제재 가능성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했다. 대북 억제와 제재, ‘전략적 인내’라는 과거 정책의 연장선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앞서는 대목이다.

지난 30여년간 실타래처럼 얽혀온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의 의도에 대한 논란부터 시작해보자. 워싱턴의 이른바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결론부터 내려놓고 대북 압박 카드를 내세운다. 그러나 평양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할 리 없다고 단정하고 나면 외교의 공간은 사라지고 만다. 오히려 북측이 여러 차례 밝힌 ‘조건만 맞으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고리 삼아 그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고 가는 것이야말로 외교의 본질 아닌가. 평양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선 해체 후 보상’이라는 과도한 전제조건은 이 가능성을 차단하는 악수일 뿐이다.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겠다’는 말도 자주 들린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외교를 리얼리티쇼쯤으로 간주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그런 인식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정상회담이 소리만 요란한 리얼리티쇼였다면 그 이유는 뒤집어 말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동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싱가포르 선언은 이행되지 않았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이 제시한 영변 카드를 거부했으며, 결국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를 타산지석 삼아 ‘진짜 합의’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북한과 ‘진짜 합의’를 하려면 협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죄와 벌’이라는 인식틀로는 진전을 보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이유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사실상의 쌍중단 상황을 다음 단계로 이어가려면 협상에 나선 평양의 ‘좋은 행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2018년과 19년 두 나라가 접촉과 협상을 이어가는 동안 미국은 북한에 대한 200여 차례의 추가 제재를 가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기계적 관료주의 대신 유연하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제재 카드를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핵과 인권의 우선순위 문제가 있다. 전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시한다. 문제는 비핵화 요구와 인권 사안 압박이 동시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의 인권 문제 제기는 평양한테는 적대시 정책의 일환으로 핵 보유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방아쇠와 다름없고, 결과적으로는 인권 상황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개선을 거둘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핵 문제에서 주요한 진전이 만들어지고 제재가 완화되는 경우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의 인권 제기 역시 비핵화 진전 과정에서 양측이 신뢰를 구축했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평양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호전이 일정 수준 이상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북한에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시민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면 시간은 걸리더라도 인권 상황 역시 지금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북핵 역사 30년의 아쉬운 순간에는 어김없이 정보 실패와 판단 착오가 있었다.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북한 체제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 북한의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자의적 평가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체제 안보를 위해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정권을 장기 안정화하는 데 필수적인 경제 성과를 위해서라도 핵 협상은 평양에 버릴 수 없는 카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이제는 북한에 대해서도 ‘맥락적 정보’(contextual intelligence)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 가장 필요한 파트너가 한국 정부라는 사실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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