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철 ㅣ 전국팀장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언제나 고장 난 문명의 첫 번째 신호다.”
로맹 가리의 문장이 눈에 들어온 것은 동마다 생긴 쓰레기 산 때문이다. 스팸, 과일, 정육, 참치 상자 등 알록달록한 설 선물 세트 포장지가 쏟아진 탓에 산은 지난주보다 높았다. 전부 한 아파트에서 나온 건가 싶은 쓰레기 산은, 역설적으로 ‘고요한 회색 콘크리트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구나’ 하는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쓰레기 산의 상당 부분은 인천 경인아라뱃길 끄트머리, 경인항 근처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로 흘러들 것이다. 적어도 4년 동안은 말이다. 그 뒤엔 쓰레기들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쓰레기 독립선언’을 했다. 2025년을 끝으로 더는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나온 쓰레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서울, 경기는 인천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깬 것이라고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2015년 합의문에 대체 매립지를 만들지 못하면 지금 매립지 일부를 계속 쓸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는데도 못 본 척했다는 것이다. 대체 매립지를 찾는 데 여러 해가 걸린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인천시가 야박하게 군다고 여긴다. ‘조금만 더 쓰자’는 게 서울시, 경기도의 마음이다.
반대로 인천시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자체 매립지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더 시간을 끌어봤자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매립지로 들어오는 쓰레기 가운데 약 80%가 서울과 경기 것이라 계속 떠안을 수 없다는 사정도 있다. 수도권 세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은 이미 여러 해가 묵었다.
어쨌든 터를 지닌 곳은 인천시인지라 서울시와 경기도는 결국 올해 4월 중순까지 ‘수도권 대체 매립지 입지를 찾는다’는 공고를 냈다. 매립지를 제공하는 지자체에 3조3천억원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내걸었다. 아직 선뜻 후보지로 나서는 곳은 없다.
인천시 역시 독립선언이 순조롭지 않다. 옹진군 영흥도를 인천시 자체 쓰레기 매립장 후보지로 선정하고 ‘인천 에코랜드’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반대가 거세다. 주민들은 영흥 화력발전소 탓에 수십년을 석탄재로 고생했는데, 이번엔 시가 쓰레기장을 떠넘긴다고 화나 있다. 쓰레기 트럭들이 드나드는 길목이 될 수 있는 대부도와 오이도 주민들도 반대 대열에 동참했다. 2600만 수도권 인구가 쓸 쓰레기장을 마련하지 못해 다들 쩔쩔매는 모양새다.
그런데 매립지 마련 작업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그다음은 어쩔 것인가. 1992년 만든 1600만㎡ 규모의 수도권 공동 매립지가 다 차는 데는 3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비대면·택배 시대 맹렬한 쓰레기 배출 속도를 생각하면 매립지가 꽉 차는 주기는 더 짧아질 것이다. 이 쓰레기가 또 어디로 흘러갈지는 나중의 문제이겠지만, 짐작해볼 수는 있다.
앨런 와이즈먼이 쓴 <인간 없는 세상>에는 ‘근본 없는’ 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태평양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 어디쯤 있는 이 섬은 1997년 발견됐다. 찰스 무어라는 선장은 이 섬을 일주일 동안 헤쳐 갔다. 그는 1600㎞를 항해하며 섬이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그물과 낚싯줄, 컵과 병뚜껑, 샌드위치 랩 조각과 맥주 팩 고리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쓰레기 더미라는 것을 알았다. 알갈리타 해양연구재단을 만든 무어는 이 섬의 넓이가 아프리카 대륙 크기와 맞먹는다면서 ‘지구상에 이렇게 떠다니는 지저분한 열대 환류가 여섯개가 더 있다’고 말했다.
신드바드의 고래 섬보다 신기하고 오싹한 이야기다.
시인 박재삼은 ‘꽃게 잡아 함부로 다리를 분지르고, 생선을 낚아 회를 쳐 먹었으며, 햇볕에 반짝이던 물꽃무늬 물살을 마구 헤엄쳤다’며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했다는데, 일주일 만에 또 두 손이 모자라도록 쓰레기봉투를 들고 선 나는 무력감을 감추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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