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 ㅣ 저널리즘책무실장 (언론학 박사)
지난달 26일 <한겨레> 현장 기자들이 한겨레가 법조 보도 등에서 ‘정권 감싸기’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 성명을 냈다. 시민과 독자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친여 매체 맞네”라거나 “한겨레가 언제 문재인 정권 편들었냐. 오히려 비판하기 바빴지”란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 시간이 좀 흐른 지난 3일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현장 기자들과 편집국 국장단의 토론회가 열렸다. 독자와 언론 전문가로 이루어진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위원장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교수), 저널리즘책무위원회(위원장 김영욱 카이스트 교수)에서도 이 사안을 논의했다.
돌이켜볼 때 현장 기자들의 요구는 권력 감시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 같은 대의를 앞세우다
이용구 법무 차관 관련 오보까지 내게 된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들은 토론회에서 “특정 세력이나 집단 이익을 위해 사실을 일부러 누락하거나 외면하는 사례”가 있고, ‘우리 편’을 비판하는 보도는 “팩트체크가 엄청 꼼꼼해지고 저쪽 편이라고 하면 느슨해”진다고 지적했다. 심석태 책무위원(세명대 교수)은 이런 목소리가 “한겨레가 추구하는 가치를 비판한 게 아니고, (…) 어떤 절차적 잘못이라든지, (…) 사실의 문제인데 왜 이런 것들을 엄밀히 다루지 못하는가에 대한 자성”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사가 가치와 관점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기본 책무이다. 그 결과로 ‘친정부적’이란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노동이나 사회정책, 나아가 검찰개혁 등의 방향에서 한겨레의 판단은 현 정권과 같을 수 있지만 그 과정의 공정성이나 엄밀성은 꼼꼼히 따져야 하는 것도 맞다. 임자운 열린편집위원(변호사)은 “언론사가 관점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그 관점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가져가는지가 문제”라며 “사실에 기반을 둬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했는지, 기사를 통해 설명되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한 세대의 경험이 공정한 판단을 가릴 위험성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토론회에서 나왔다. 가치와 지향이 비슷한 집단이 하는 잘못에 둔감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좌우 못지않게 상하의 문제가 커졌고, 민주화운동을 한 세대가 더 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닌 것도 현실이다. 은연중 기사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세대 정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공정한 언론을 위해 극복할 일이란 지적도 나왔다. 배정근 책무위원(숙명여대 교수)은 “한겨레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지만 그 가치를 (특정) 집단과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가치를 같이하는 집단이 현실 권력일 때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라는 주문이다.
소통이 만능열쇠는 아니나 이것 없이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로 현장 기자와 데스크의 대면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김경미 열린편집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은 한겨레가 입장을 명확히 할 사안도 독자에게 맡기는 것 같다며 “구성원들 간의 끝장토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생각 차이를 인정하고, 그 간격을 좁히는 시스템을 정교화·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토론자로부터 나왔다. 임석규 편집국장은 토론회에서 이런 시스템을 시급히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겨레는 토론회 직후 소통데스크를 따로 발령내고 여러 단위별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취재보도준칙을 일상의 보도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
여러 언론이 이른바 ‘한겨레 성명 사태’를 보도했다. 구성원 누구도 외부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되는 걸 원치 않았으나, 어차피 비밀이 없는 시대이다. 사실 국민주 신문 한겨레의 33년 동안 젊은 구성원의 과감한 문제제기가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언론사에 갈등이 있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제대로 논의해 발전의 계기로 삼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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