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희 ㅣ 경제부장
여당, 정세균 국무총리와 기획재정부의 재정지출을 둘러싼 공방이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여당이 추진하던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기재부가 하위 70%에게만 지급하겠다고 맞선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자영업자 손실보상 법제화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표출됐고, 최근에는 4차 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을 놓고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 “개혁저항 세력” 같은 기재부에 대한 날 선 비판과 기재부의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감당 가능한지 짚어봐야 한다” 같은 항변이 오갔다.
사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과 국민 피해를 더 많은 재정지출을 통해 줄여야 한다는 쪽과 국가채무가 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지출 규모를 축소하려는 기재부의 대립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다소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많은 나라가 국가채무 증가를 감수하면서도 막대한 규모의 재정을 지출해 국민들의 고통을 막으려 노력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해 지출한 재정은 국내총생산 대비 3.4%로 주요 20개국(G20, 스페인 포함 21개국) 가운데 15번째에 그쳤다.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비율(3.1%)과 국가채무비율(48.1%)은 G20 평균(13.0%, 106.8%)의 4분의 1, 2분의 1 수준이다. 한국재정학회의 최근 보고서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하에서 재정확장을 통한 투자는 총수요를 늘릴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자체의 잠재력을 확장하여 비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상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코로나19 대응 재정정책의 효과와 재정건전성 관리방안 연구’, 책임연구위원 류덕현 중앙대 교수)
이번 갈등이 어떤 식으로 봉합되든 재정 논쟁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과정에서 케이(K)자로 벌어진 양극화를 치유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산업·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처, 고령화·저출산 심화에 대한 대응까지 정부에 요구되는 과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을 마련하는 주된 방식은 두가지다. 빚을 내는 것(국채 발행)과 세금을 걷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를 피하자면 복지를 비롯한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재정학회 보고서는 이런 상황을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라고 표현한다. ‘낮은 국가채무비율-높은 복지 수준-낮은 조세부담률’ 세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선두주자인 스웨덴은 국가채무비율이 국제 평균보다 낮지만 조세부담률은 높다. 일본은 복지 수준이 높은데 조세부담률이 낮고, 대신 국가채무비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국가채무비율과 조세부담률이 모두 낮은 대신 복지 수준도 낮다.
복지 수준을 높이고 정부가 사회변화에 맞춰 제 역할을 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국채 발행과 증세를 통해 재정 규모를 키워야 한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최악은 적자 혐오증과 증세 기피증에 사로잡혀 둘 다를 회피하다 정부 역할이 계속 위축되는 것이다. 특히 보수진영에서는 “국민들이 쓰러져가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라고 외치다가도 이를 위해 빚을 내겠다고 하면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며 반대한다. 증세를 하자고 하면 “결국 국민부담을 늘리겠다는 건가” 하며 막아선다.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일 뿐 실제로는 정부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꼴이다.
여러 정치인과 대선주자들이 ‘기재부 때리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역할에 소극적인 기재부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의 역할과 재원 조달이라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떤 해결책을 지향할지다. 어느 수준의 정부지출과 복지를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지, 이를 위해 재정이 얼마나 요구되는지, 국가채무는 어디까지 늘릴 것인지, 세금은 어느 정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계도가 제시되고 논의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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