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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데이팅 앱 하는 ‘그런 사람’ / 정대건

등록 2021-02-05 13:43수정 2021-02-06 15:47

정대건ㅣ소설가·영화감독

어느 모임에서 내가 소개팅을 환영한다고 했다가 데이팅 앱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는 내가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그런 사람’이었느냐는 흐름으로 흘러갔다. 당황스러웠다. 데이팅 앱에 대한 큰 선입견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데이팅 앱을 이용해 남자친구와 연애 중인 여자 사람 친구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한테는 남자친구 (데이팅 앱이 아니라)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해.”

무려 2021년인데, 데이팅 앱이 무슨 음지의 것도 아닌데, 그래야 할까. ‘인연은 만드는 거야’ 하고 앱스토어 투데이에 데이팅 앱들을 소개하는 공식 스토리가 올라오는 세상인데. 편견의 시선을 보낸 그 사람은 혹시 영화 <클로저>에 나온 성적인 인터넷 즉석 만남 같은 것을 상상한 걸까. 곰곰 생각해보면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한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데이팅 앱을 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매치가 되어도 케미가 좋지 않으면 빤한 인사나 나누다가 대화는 멈추게 된다. 주선자 없는 셀프 소개팅 같은 거랄까. 데이팅 앱 속 세상에는 데이팅 앱을 이용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실존하는 개별의 사람이 있다. 친구를 찾는 사람, 채팅하려는 사람, 가볍게 만나려는 사람, 진지하게 만나려는 사람 등이 뒤섞인 채 거기, 존재한다.

작년 유례없는 코로나 언택트 상황으로 한해를 보내면서 많은 이들의 삶이 변했다. 재택근무까지 이어지자 오히려 데이팅 앱 이용자가 전세계적으로 훨씬 더 늘었다고 한다. 프로필에 언택트 상황이라 앱을 시작했다고 적어둔 사람들이 많아진 게 체감된다. 각종 모임 자리도 힘들어지니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프리랜서인 나는 코로나 한참 이전부터 언택트 상황이었기에 일찍이 데이팅 앱을 이용했다. 영화학교까지 졸업하고 나니 소속이 사라졌고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되었다. 파트타임 수업 이외에는 거의 늘 혼자 있었고 혼자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성을 만날 기대와 목적으로 동아리나 독서 클럽을 기웃거리는 것보다는 데이팅 앱에서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훨씬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생각한다.

데이팅 앱은 지역 기반이든 하루에 몇명을 소개해주는 시스템이든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드러나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외모나 소개글 몇줄로 평가하게 될 걸 알면서도 자신의 사진을 걸고 자기소개를 쓰는 일은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정성스럽게 쓴 자기소개들을 읽다 보면 그런 용기를 내서라도 누군가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마음이 보인다. 그럴 때면 정감 가는 거대한 외로움의 공동체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데이팅 앱을 통해 두번의 연애를 했고 유쾌한 친구도 생겼다. 그날 모임에서 맞닥뜨린 편견의 시선은 내가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나서 했던 지난 연애의 시간(계절을 함께 보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을 가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그 모든 것)을 폄하하는 듯했다. 연애를 했던 상대방도 ‘그런 사람’으로 취급당했다고 생각하니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어떤 사안이나 사람에 대해 작품을 쓸 때처럼 긴 시간 깊게 생각하지 않는 한, 일상에서의 나도 편협한 선입견에 기대는 사람이다. 그게 더 쉬우니까. 편하니까. 앞으로 나도 언행을 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연애나 외로움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외로움을 벗어나려는 노력도 왜 부끄러운 것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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